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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찾아가는 공간 : 탈로서울


서울에서 만나는 핀란드


WHY

낯설지만 익숙한 공간


지역, 장소 앞에 ‘탈’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어딘가를 벗어난다는 뜻이 된다. 쉬운 예로 서울 살이에 지쳐 서울을 벗 어나는 현상을 ‘탈 서울’이라고 하는 것처럼. ‘탈 서울’에서 한 글자를 붙였을 뿐인데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공간이 있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탈로서울이다. 탈로서울은 탈서울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예전만 못하다지만 아직은 여 전한 패션의 중심지 가로수길의 한 골목에 있다. 독채 건물을 상상했다면 ‘여기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대단지 아파트가 지배한 서울에서 탈로서울은 3층짜리 오래된 빌라의 3층에 있다.


빌라는 30년 전쯤 지어졌다. 층고가 낮고 볕이 짧게 드는 공간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특별히 이국적이거나, 이색적이거나 혹은 독특하지는 않다. 낯설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고,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나무에 품에 안긴 듯 천장부터 테이블, 선 반 등 공간을 채운 대부분의 소재는 나무다. 공간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나무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지도.


탈로서울은 처음부터 스테이로 기획된 공간은 아니었다. 광고 콘텐츠 제작을 하는 지치구 대표에게 이 공간은 고된 야근 후 잠깐 눈을 붙이는 휴식 공간이었다. 그러다 조금 색다르게 공간을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집은 같은 취향의 특정 다수를 위한 탈로서울로 변신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은은하게 드는 볕은 춥고 시린 핀 란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언제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기약 없는 여행에 지친 요즘, 탈로 서울은 핀란드 여행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탈로서울과 핀란드를 연관 짓는 이유는 탈로서울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조명, 식기의 95% 이상이 핀란드 제품이기 때문이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에 있는 브라운 스피커만이 ‘MADE IN GERMANY’인 곳이다. 소파 대신 둔 거실의 의자를 제외하곤 가구와 조명 모두 핀란드의 국민 디자이너 알바 알토가 창립한 아르텍의 제품들이다. 탈로서울은 국내에 단독 매장이 없는 아르텍의 가구를 공간 대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서울을 벗어나 핀란드로 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이제 그 문을 열고 핀란드 여행을 떠날 차례다.



PEOPLE

경험에서 시작하다


탈로서울의 지치구 대표는 광고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가 신사동 근처에서 진행되다 보니 이 근처로 집을 얻었는데 실제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한창 바쁠 때는 한 시간 반 이상 잔 적이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5개월 동안 이 공간에서 살 때도 이웃들과 마주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 그러다 우연히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탈로서울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가로수길 메인 스트리트와 멀지 않지만 이면적인 느낌이 드는 골목길의 정취마저 좋았다. 


빈티지 가구 콜렉팅에 빠진 것도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빈티지 가구숍에 가서도 앉아볼 수 없었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을 스테이로 바꾸게 된 것이다. 빈티지 가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탈로서울에 와서 관심 있던 의자에 앉아보고, 침대에 누워도 보면서 경험을 확장하는 거죠. 탈로서울은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오프라인 플랫폼입니다.”


빈티지 가구 붐은 4~5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치구 대표 역시 처음에는 화병, 컵 등 작은 것들 위주로 구입하다가 조금씩 가구로 눈을 돌렸다. 빈티지 가구가 한창 유행일 때 빈티지 가구 쇼룸 겸 카페로 운영하던 곳들이 있었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곧 지속성의 결여라는 생각을 도출했다. 예뻐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모두가 ‘전시품’으로 대하는 빈티지 가구를 그는 ‘경험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작은 규모라는 단점을 오히려 잘 활용해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고, 지속성 유지에도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그동안은 막연히 빈티지 가구가 좋아서 컬렉팅을 해왔었는데 탈로서울을 준비하면서 그도 배운 것이 많다. 


건축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이 곳을 알바알토의 아르텍으로 채우겠다는 다짐을 한 후 지치구 대표는 아르텍과 알바 알토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핀란드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알바 알토의 하우스와 스튜디오를 위치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보고, 또 보고 이미지를 수집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넘긴 자료 사진만 700장이 넘었을 정도. 700장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알바 알토와 아르텍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은 그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단순히 이런 스타일의 공간, 이 이미지와 똑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알바 알토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LOCATION

힙한 거리의 핫 플레이스 사이 

조용한 골목길


지금은 많이 시들 해지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의 특성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가로수길은 한때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이 즐비한 거리였다. 모험심 강한 젊은 창작자들이 작은 숍을 오픈하고, 그 숍들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던 특색 있는 곳. 지금은 프랜차이즈 카페, 의류 매장이 대로변을 장악하고, 어느 날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을 정도로 예전의 힙함은 많이 퇴색됐지만 여전히 가로수길은 우리에게 상징적인 거리다. 늘 번화한 이 길에 번화함과는 결이 다른 탈로서울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 


적어도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 가로수길은 데이트 코스 혹은 쇼핑하러 가는 곳이지 여행을 위한 동네는 아니다. 숙박을 목적으로 가로수길을 찾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일 정도. 하지만 탈로서울이 생기면서 가로수길에 가는 또 다른 목적이 생겼다. 가로수길 간 김에 탈로서울이 아닌, 탈로서울 간 김에 가로수길도 둘러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탈로서울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가로수길과 200m 정도 떨어진 골목에 있다. 지도 앱을 열어도 도보 이용을 추천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탈로서울의 이면성이 더욱 놀랍고 매력적이다. 제법 시끄러운 이 동네에서 이렇게 한갓진 골목이, 그리고 스테이가 숨어 있다는 것이 말이다. 30년도 더 된 이 빌라에서 탈로서울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다섯 가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그야말로 터줏대감 이웃사촌들이다. 조금은 텃세를 부릴 법한데도 이웃사촌들은 이 공간을, 젊은 사람의 호기로움을 무심한 듯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MAKING STORY

경험을 쌓는 과정


지치구 대표는 이미 많은 준비를 끝낸 상태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났다. 특히 주방을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팀을 찾았고, 라이크라이크홈을 만나게 됐다. 처음 손명희 대표는 목적이 불확실한 이 공간의 디자인 의뢰를 거절했다고. 가정집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드나들 공간이면서도 집 같아야 하는 모호함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가 또 이 모호함에 끌려 탈로서울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지치구 대표는 손명희 대표와의 첫 미팅에 700장이 넘는 이미지를 전달했고, 미팅을 진행하면서 11장 정도로 추려졌다.


아예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성이 끝난 공간에 맞게 진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울림이다. 누구나 와서 봐도 안정적이어야 하며 안정감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과해 보이거나 과장된 부분은 최소화했다. 탈로서울의 첫인상이 강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과장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일 터. 지치구 대표는 강렬하지 않지만 잔상이 오래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살던 집이 탈로서울이 되면서 드라마틱 한 변화보다 소소한 매력을 뿜어내는 공간이 된 것이다.



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나무 천장. 습기가 생기는 부엌과 욕실에까지 나무 천장을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핀란드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사우나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꼭 나무 천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완성한 나무 천장 덕분에 층고가 낮음에도 천장을 볼 때 답답함도 덜 하고 훨씬 안정감이 생겼다. 입구의 유리벽은 라이크라이크홈의 시그너처 포인트. 지치구 대표는 현관의 유리벽을 두는 것이 공간을 더 좁아 보이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줬다. 좁은 공간을 분리하는 효과도 있어서 활용성이 더 뛰어난 공간이 완성됐다.


시공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숨어 있는 디테일은 있다. 천장과 가구, 문, 바닥까지 모두 같은 우드지만 톤이 모두 다르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나무의 색을 담고 싶었다. 시작점이 모두 다른 나무들이 얼마나 다르게, 다른 색으로 물들어 가는지 탈로서울을 찾는 게스트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북유럽 사람들이 가진 가구와 공간을 대하는 태도나 지혜, 문화를 경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각자 다른 취향으로,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길 바라기 때문에 이런저런 경험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경험과 선택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취향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SPACE

알바 알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탈로서울을 만들기 위해 알바 알토 관련 이미지를 700장이 넘도록 수집했다는 지치구 대표의 말은 탈로서울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할 수 있다. 단순히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텍의 가구를 놓는다고 해서 이 공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왜 알토가 그의 집에 이 가구를, 이 위치에 놓았는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었다면 탈로서울은 그저 평범한 빈티지 컬렉터의 쇼룸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연구하고,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했다. 알토 하우스를 탈로서울만의 분위기로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은 성과로 보답받았다. 


똑같은 가구를 놓는다고 해서 똑같은 공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치구 대표는 알토 하우스의 이미지뿐 아니 라 북유럽 거주 문화에 대한 책도 찾아 읽었다. 우리나라는 웃풍을 이유로 창문에 바짝 붙여서 가구를 두지 않지만 북유럽은 조금이라도 햇살을 받기 위해 가구를 창문 쪽에 둔다. 의자, 책상, 심지어는 선반까지 모두 창문 바로 아 래 두고 짧은 시간이지만 햇살을 받는다. 그 영향으로 큰 침실의 책상, 작은 침실의 의자 등 가구들이 창문과 가까 운 곳에 있다.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다르게 보이는 디테일이다.


숨은 디테일은 또 있다. 커튼 길이를 창문 길이에 딱 맞춘 것. 우리나라는 커튼을 바닥에 끌리지 않을 정도로 길게 두는 경우가 많은 반면 북유럽은 창문 앞 책상에 커튼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길이를 딱 맞춰 제작한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을 한 것이다. 큰 침실의 책상의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텍 책상. 책상다리가 앉는 사람을 향해 90도 각도로 붙어 있는 알바 알토의 책상과 다르게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책상은 앉은 사람의 다리가 편하도록 45도 각도로 붙어있다.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용자만이 알 수 있는 이런 디테일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집은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휘황찬란하고 들어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공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거실에도 온몸을 푹신하게 감싸주는 소파가 있지도 않다. 대낮에 가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 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바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치구 대표는 3년간 탈로서울을 준비하면서 요즘 인기 있다는 숙소는 거의 모두 서치했다. 그곳에는 여지없이 이케아의 가구가 있었다.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수없이 많은 스테이는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 서울에서 떠나는 핀란드 여행

DESIGN | 오래된 빌라의 장단점을 살린 리모델링

MIND | 바쁜 일상 속 붙잡고 싶은 작은 여유

PRICE | 온전한 휴식과 다양한 경험이 있는 하루



글 ⓒ류창희

사진 ⓒ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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