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사방이 탁 트인, 썬베드에 남편과 나란히 누웠다.
파아란 하늘과 실바람이 우리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깊은 산골의 일상은 드높은 하늘과
사방으로 둘러싸인 대 자연의 장엄함을
가로막힘 없이 누리는 행운을 고요히 만끽한다.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돌아보니 이렇게 충만한 바탕 화면을 두고도,
그날그날의 해프닝에만 급급해 살았어 "
연이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책을 읽을 때도 나는 글자에만 매달렸지
글자를 담고 있는 지면의 존재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속 움직임에만 몰두한 채 스크린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만약 매 순간 스크린을 놓치지 않았다면
실재처럼 웃고 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악보가 특별한 노래가 될 수 있는 이유 또한 쉼표,
즉 여백의 순수 때문이라는 같은 맥락이 떠올랐다.
내 말이 끝나자,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 지금,
삶의 초월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젊은 시절 내내,
남편은 나의 이런 이상적인 성향을 비현실적이라고
마땅치 않게 여기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렷해졌다..
이상과 초월성이라는 것이 현실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바라보는
균형과 조화의 상태임을.
바탕 화면 즉 무한의 경이로움과 접촉될 때,
개인의 힘으로 버텨내던 삶에서
생명의 삶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저절로 드나드는 숨
스스로 뛰는 심장
절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이 모든 것.
충만하고 싱그러운 생명의 삶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구원이다.
조용한 감사가
가슴 가득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