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존재
전원생활을 하며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호미질을 한참 하고 나면,
어깨 어딘가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제야 그 부위의 존재감이 또렷해진다.
아프지 않을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자리인데 말이다.
요즘엔 가끔씩 무릎의 존재감도 분명해졌다ㆍ.
무릎 관절이 불편해졌다고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웃의 한 분도 목 디스크 수술 이후,
머리의 존재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편안할 때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존재감이
불편할 때라야 더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로웠다.
문득, 무언가 큰 비밀이 숨어있음이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가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프고 지칠 때까지 먼 길을 돌고 돌았던 나의 삶
아니, 인류의 서사를 듣는 느낌과 통하고 있었다.
한때는 '나'라는 존재를 부여잡고 씨름했었다.
아프고 괴로울수록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때의 '나'는 고뇌이자 부담이었고,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 같았다.
지금은 안다.
나'라는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지점,
차라리 비존재가 되는 지점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편안한 안식의 자리라는 것을.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때 비로소,
가장 나답게 숨을 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주변에는 한때의 나처럼,
자신의 존재를 무겁게 짊어진 이웃들이 많다.
각자의 고유함은 뒤로 밀린 채,
역할과 기대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려 애쓰다 지친 삶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또한,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의 모습임을 알고 있다.
깨어남이 찾아오는 순간,
그 무거운 짐은 서서히 힘을 잃게 될 테니까.
자기를 지금 여기에 두고
자기를 찾아 방황하는 인류의 삶만큼
슬프고 처절한 것이 또 있을까를 묻지만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나를 고요히 주시한다.
깨어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