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이 벗겨진 자리
본성과 직관이 꿈틀거리며 깨어나고 있다.
충만한 생기로 가득했던 아기들은
오로지 본성과 직관만으로 빛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래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가슴도
함께 빛나고, 자연스레 부풀어 오르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 초등 무렵에 이르자
세상의 파도가 밀고 들어왔다.
박세리가 화제가 될 때는 골프 키즈 붐이 일었고,
김연아가 정점에 섰을 땐 피겨 키즈 붐이 일었다.
요즘은 의대 지원 열풍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들린다
부모들의 가슴이 흔들릴 때,
아이의 빛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이제는 또렷하게 돌아본다.
나 역시,
상업적 흥행을 향한 군중들의 박수와 환호에 정신이 흐려졌던 시간들이 길었다.
아이들의 빛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내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지금,
직관이 내게 묻는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공중을 세 바퀴, 네 바퀴 혹은 열 바퀴를 돈들
그것이 삶에 무엇을 남기는 것인가? .
문득, 웃음이 난다.
현란한 겉모습에 마음을 몽땅 내주고,
쇼를 쫒는 무리가 군중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군중의 호기심을 채우던,
그 많은 신동들의
인생 후반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직관을 잃은 채,
지성만 비대해진 사회의 허기가 느껴진다.
난파되어 표류하다 정신을 잃은 채,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도착하는 표류기가 떠오른다.
나 역시,
현대 지성의 범람 속에서 방향을 잃고
오래 떠밀려 내려갔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은 직관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교육과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씌워준
색안경이 벗겨진 자리,
자연 그대로의 맑은 눈에만 보이는 세계였다.
직관은 타고난 생명의 빛을 가만히 알아본다.
흥행의 성공 여부와 아무 상관없는,
생명 그 자체의 빛 앞에서
그저 놀라고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멀리 가지 않는다.
고요한
하루하루의 충만이
스스로 빛나는 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