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무치
문득, 아주 오래 잊고 지냈던 단어 하나가 툭 떠올랐다
후안무치였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뜻하는 말,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다 이내 중얼거림으로
흘러나왔다
'그래,
내가 바로 그 태도로 살아왔구나"
내 것이 아닌 것을 마치 내 것인 듯 여기고,
감사하기는 커녕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으니 말이다.
가정의 권위자가 이런 태도를 지니면 가정이 병들고,
그런 이들이 사회에 많아지면 결국 사회도 병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병든 사회의 한 조각이었다.
20 대엔 자살 충동에 시달렸었고
갱년기 즈음엔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땐,
내가 후안무치 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내가 보고 배운 이들 대부분이 그러했기에
그게 잘못인지 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와 고백한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이 바로 나였음을.
숨 쉬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다 나의 힘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감사할 줄 몰랐고,
몸을 내 것으로 여기며 우쭐대거나 좌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주적 기운이 나를 타고 흐른다는 것을 안다.
물컵 하나 드는 것도,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결코 내 힘이 아닌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이 그저 감사하고 기쁘다
부모나 스승의 은혜는 일찍부터 배우며 자랐다.
그 은혜를 외면하는 이들을 향해 '후레자식'이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 그 시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이제 알아차랸다.
근원적 은혜,
즉 존재 그 자체의 은혜와는 단절된 채
부모나 스승의 은혜만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얕고 모순된 일인지.
오랫동얀 혼란스러웠던 만큼
그 혼돈의 뿌리를 알고,
분명하게 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그 애타는 갈망이 하늘에 닿았고,
그의 응답하심 앞에 있음을
고요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