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형 Mar 27. 2022

예비장애인

지하철 운행방해 시위에 부쳐


중학교  맹기호 교장선생님은 훈화가 길었다. 비몽사몽  채로 억지로 받아적었는데,   마디 말이 귀에 꽂혔다. “여러분이 장애인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도, 그게 착한 일이라서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비장애인이 아니라 예비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예비장애인이라니,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입에 걸렸다.

담임선생님은 반마다  명씩 있는 특수학급 친구에게 “평범한 친구로 대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친구를 어떻게 평범하게 대하겠는가? 자연스럽게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어딘가 어색하게 위선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예비장애인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달랐다. 예비장애인이라는 말은 장애인과 나를 하나로 묶는다. 동등한 존재로 나를 격하시키는 말이고,  격하라는 표현이 내가 처음 들었을  느낀 불쾌감의 원인이었다. 그제야 친구도 같은  친구  하나로 대할  있었다. 내가 말하는 “우리안에  친구도 들어갔다.

장애인 단체에서 펼치는 시위가 언론에서 연일 보도된다. 여당 대표는 “지하철 운행방해 시위는 소구력이 없습니다라며 연일 장애계 때리기에 나선다. 일반 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는 동의받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  말이 틀리지 않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의받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러는 이유가 있다.

장애인은 다른 소수자와 다르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수많은 약자는 그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장애인은 다르다. 특정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일종의 etc 가깝다. 시각장애인과 걷지 못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차이보다 크다. 그런데도 그들이 공유하는  어떤 신체적 특징이거나 가치가 아니라 “비정상이라는 개념이다.

다른 소수자의 경우는 차별을 없애는 행위가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여자도 일하면 남자만 일할 때보다 효과적이다. 하기 싫은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해준다. 장애인은 다르다.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에 장애인은 제외된다. 이들 복지에 힘쓰는 일은 표가   뿐만 아니라 돈도  되는 일이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번번이 기재부에서 막힌다. 쉽게 말해  낭비라는 거다. 이들이  나은 삶을 살아도 생산성은 증가하지 않는다. 장애계의 공공의 적은 기재부다. 이들이 대통령을 부르짖는 이유도, 기재부 문턱을 넘을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의 기본권에 있다. 장애인은 평균 37만원을 받고 일한다. 장애인의 54% 중졸 이하의 학력이다. 문제는 돈이다. OECD 가입국의 GDP 대비 장애인 복지 예산 평균은 1.6%지만, 한국에서는 0.6% 이들을 위해 사용한다. 장애인의 기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원인은 돈이다.

나는 솔직히 부끄럽다. 우리는 가장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사람답게  권리를 보장해야  의무가 있다. 장애계는 여성계, 법조계처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층이 아니다. 이권과 특권을 위해 싸우지 않고 기본권을 위해 싸운다. 이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악역을 자처한 것에는 OECD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우리 모두의 인심에 있다.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했다면, 사람답게   있도록 보장해야 옳다.

우리는 예비장애인이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이고, 우리는 우리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만큼, 그들의 기본권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옳다. 장애계를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이유는 장애계가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며 농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충분하게 돈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와 돈의 영역이 아니라 당연의 영역이다.

불편한 몸으로 시민의 출퇴근을 막고, 여당 대표에게 조리돌림을 당해야만 기본권을 보장받을  있는가. 효율과 이익의 논리 전에 그냥  보장해줬으면  됐나. 기재부는  그들의 교육과 이동까지 심사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했나.

장애인은 표와 돈의 논리 어디에서도 승리할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그들은 투쟁하는 중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런 이유로 말이다. 올해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장애복지예산과, 그들을 조리돌림하는 여당 대표에 답답해서 한마디 한다.

작가의 이전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