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깎아내리는 가짜 유머
유머감각은 인간관계에서 윤활유와 같다. 유머러스한 사람이 주목을 받고 인기도 많다.
누구나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중심에 서고 싶은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서는 방법이 꼭 따뜻하거나 품격 있는 방식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웃음을 자극한다.
분위기를 띄운다며 동료의 외모나 사투리, 말투나 동작 등을 흉내 내며 웃음을 유도한다.
그런 유머는 약자에 대한 조롱, 비하, 심지어 모욕을 양념삼아 자기 존재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런 저질스런 유머에 다중은 웃음으로 반응하는 집단심리가 있다.
모두 웃지만, 사실 그 웃음은 저질과 동조의 혼합물이다.
결국 웃음은 공동체의 결속이 아니라, 불평등의 확인이 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구조는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누군가의 외모, 체형, 장애, 출신을 희화화하여 관객을 웃기는 장면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을 ‘장난 속 웃음’으로 포장한 폭력이다.
정작 웃음거리의 소재가 된 누군가는 속좁은 사람으로 오해될까봐 속상한 표정을 감추고 웃어 넘긴다.
다중은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 뒤에는
“나와 다르거나 약한 존재는 조롱해도 된다”는 무의식적 동조가 남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사회 전체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마모된다.
이런 비열한 유머의 근원에는 다중에게 주목 받고 싶은 자기우월 욕구가 있다.
조롱과 비하로 빚어낸 비열한 웃음 제조는 자신이 더 낫다는 확신을 통해 안도하려는 심리가 결합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SNS와 미디어를 통해 “더 강한 자극”을 보상하는 구조이다.
웃음조차 점점 강도 높은 자극이 되어야 소비된다. 그 결과, 부드러운 유머나 지적인 위트는 묻히고
“조롱, 비꼼, 모욕”이 웃음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오인되는 것이다.
즉, 공감보다 리액션이 빠른 시대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진짜 유머는 누군가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상대와 나를 함께 올리는 유머, 즉 상승의 유머(elevating humor)는 자기 자신을 먼저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자신의 약점을 풍자하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웃음 뒤에 따뜻한 잔상이 남게 한다.
이런 유머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사회적 거리감을 줄인다.
자기를 살짝 희화화하면서 타인을 편하게 만드는 웃음이다.
비열한 유머는 웃음의 탈을 쓴 자기 우월의 언어이며, 공감을 잃은 사회의 불안한 자화상이다.
하지만 유머는 본래 치유와 연대의 힘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다.
진짜 유머는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도, 세상을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지혜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