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살기 보다 많이살기
삶, 많이 살기
오래 살기보다 많이 살기.
이 문장은 나의 친구 시인의 통찰에서 길어 올린 삶의 명제다.
그의 말 속에는 생의 길이보다 깊이를 중시하는 철학이 배어 있다.
오래 사는 것은 시간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얼마나’라는 척도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많이 사는 것은 ‘어떻게’의 문제다.
삶의 양이 아니라 결의와 감응의 질이 그 기준이 된다.
많이 산 사람은 하루를 열흘처럼 느낀다.
그의 시간은 두텁고, 그의 하루는 의미의 결로 덮여 있다.
반면 오래만 산 사람은 한 해를 하루처럼 흘려보낸다.
그의 시간은 얇고, 그의 생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래 살기와 많이 살기의 경계에는 ‘깨어 있음’ 이 있다.
의식이 깨어 있을 때, 우리는 하루라는 나무에서 전체 숲의 생명을 본다.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우주의 질서가 깃들어 있음을 알아차릴 때,
그 사람은 이미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이 산다는 것은 경험의 횟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한 번의 경험 속에서 천 개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이는 단지 이동하고, 누군가는 그 길에서 인생을 배운다.
삶은 양의 경쟁이 아니라, 깊이의 발견이다.
오래 사는 사람은 수명을 늘리려 하고, 많이 사는 사람은 순간의 의미를 늘린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 힘을 쓰지만, 많이 살기 위해서는 멈춤과 관찰이 필요하다.
삶의 속도를 늦추어 느리게 걷는 용기, 그 안에서 생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감각.
오래보다 깊게, 수명보다 생명을 많이 사는 법을 깨닫게 되는 하루, 내 친구 시인의 집에 가면,
그래서 오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