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에 대한 반박

사유를 지키기 위한 나의 저항

by Surelee 이정곤

알고리즘 이후의 인간
– 사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

나는 누구보다도 인터넷의 혜택을 깊이 누려온 사람이다.
웹호스팅을 만들고, 이미지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사이버박람회와 게임의 세계를 설계하며,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인터넷을 ‘해방의 공간’이라 불렀다. 아무도 나를 가두지 않고, 누구도 나의 시야를 제한하지 않던 광활한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최근까지도 나는 그 흐름을 잇고 있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AI의 도움을 받아 작곡을 하며, 기술이 주는 새로운 도구들을 즐겁게 탐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묘한 균열이 들기 시작했다.
기술은 여전히 영리한데,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은 점점 얄팍해지고 있음을나는 목격하기 시작했다.

신체는 지키면서도 정신은 왜?

주변에서는 금연을 하거나 금주를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슴이 답답하다며 담배를 끊고, 건강 검진 수치가 나빠졌다며 술을 줄인다.
그들의 선택이 백번 타당하고 현명하다. 몸은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고,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니까.
그러나 정작 정신을 지키기 위한 금욕에 대해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고력의 근육이 쪼그라들고, 집중력의 나이테가 얇아지고, 사유의 시간은 얇게 갈라져 금이 가도 아무도 그것을 위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흡연은 폐를 망가뜨리지만 알고리즘은 인간의 사고를 망가뜨리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몸보다 생각에 더 둔감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알고리즘은 처음엔 우리를 돕는 비서처럼 다가왔다. 좋아할 만한 영상을 찾아주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골라주고,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먼저 꺼내주며, 우리를 편안하게 감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편안함이 나의 시간을 잠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리즘이 정한 우선순위 속에서
우리는 생각할 틈 없이 반응만 하고, 질문하기보다 소비하게 되고,
머무르는 대신 흘러가버린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던 깊은 문장, 한 번쯤 던져볼 만한 불편한 질문,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새로운 감각들은 추천 알고리즘의 솜씨 좋은 정리 속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로 기울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알고리즘적 인간 노예화의 시작이다.


창작자에게 찾아온 미세한 균열

나는 오랫동안 창작을 해온 사람이다. 코드를 짜고, 화면(UI)을 만들고, 영상과 음악 등 멀티 도구를 활용할줄 아는 존재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유튜브를 만들고, 보고,AI 도구를 손쉽게 활용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내 사고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음을 어느 순간 문득 느꼈다.
자꾸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 반응하게 되고, 문장을 천천히 곱씹는 시간이 줄고, 내가 품어야 할 생각들을 알고리즘이 먼저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깎여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창작자의 감각이 흐려진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가 안쪽에서부터 부스러지는 것과 같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점점 비어간다.


의도적인 거리두기 — 정신을 위한 금식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유튜브 제작을 멈추고, 숏츠 시청을 끊고,
AI에 대한 의존도 천천히 낮추기로 했다.
이 작은 결심은 몸을 위한 금연보다 정신을 위한 ‘금식’에 가깝다.
한 달을 넘긴 지금, 나는 놀라운 변화를 겪고 있다.
집중력이 돌아왔고, 사유가 다시 느려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글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넉 달 동안 글쓰기에만 몰두한 시간들은 나에게 새로운 신경망을 열어준 듯했다.
글쓰기는 천천히 생각하고, 생각을 머금고, 나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알고리즘이 강요하는 속도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니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알고리즘 시대에 인간성을 지키는 작은 저항의 방식이다.


알고리즘 이후의 인간이 살아남는 법

알고리즘은 앞으로 더 정교해질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는
더 좁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인간을 압도해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느리고 깊게 생각하는 능력, 우연히 새로운 무엇을 만날 수 있는 감각,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태도, 창작자의 고유한 긴 호흡이다.
몸을 위해 금주를 하듯 정신을 위해서도 나는 알고리즘과의 거리두기를 배워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기술 이후의 시대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 능력을 지키는 일은 이제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재 방식에 관한 문제다.
나는 오늘도 알고리즘의 파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글을 쓴다.
그것이 내가 나이들면서 남길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저항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