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 사는 법
내 친구 미키 이야기
내 기억에 미키에 관한 이야기는 두 번째쯤 되는 것 같다.
새해가 밝아 태국의 반끄릇에 있는 나의 리조트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마치 주인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오래된 식구처럼, 그가 묵고 있는 방갈로의 테라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는 어눌한 영어로 “마이 프렌드”라고 말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남자는 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 리조트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걸.
우리 숙소에는 유럽의 단골 손님들이 많다.
매년 연말이면 찾아와 적게는 한 달, 보통은 석 달쯤 머물다 가는 노년의 여행자들은 유럽에서 오는 반가운 단골 손님들이다.
2014년부터 이어진 인연이니 어느덧 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스웨덴의 이반과 조나단 부부, 요한나 부부, 독일인 마티아스와 그의 태국 아내 찌압, 독일 형사 출신 허버트, 프랑스의 서커스단에서 은퇴한 제할과 마아틴, 매일 뛰기만 하던 마라토너 헬무트와 그의 꽃다발 같은 에스더, 영국인 톰과 미얀마 젊은 아내 사뭇, 그리고 내가 미안함을 다 갚지 못한 채 떠나보낸 제인.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의 무게 앞에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하나둘 운명을 달리했고, 지금까지 찾아오는 친구는 마티아스, 프랑스 부부, 그리고 내가 미키라는 이름을 붙여준 독일인 마이클뿐이다.
처음 그를 만난 날은 비가 오던 어느날 오후였다.
어깨에는 젖은 배낭을 메고, 손에는 바퀴가 고장 난 슈트케이스를 질질 끌며, 우리 리조트 정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예약도 하지 않은 채, 성수기의 반끄릇을 무작정 찾아온 사내.
그는 내가 만난 독일인 중 영어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었다.
말은 더디고 어눌했고, 모국어인 독일어조차 마치 걸음마 배우듯 천천히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내가 쓰는 방갈로로 데려왔다. 그리고 킹사이즈 침대를 내주고, 나는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다.
그는 방 안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왔고, 나는 정중하게 벗어달라고 했지만 그의 머뭇거림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어색한 눈빛이 묻어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에 흠뻑 젖었는데도 그는 샤워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의 코골이,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여 마치 멈추지 않는 기차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다른 숙소를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몇 해 전 교통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코마 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그가 동면 같은 무거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은 이미 한 계절을 통째로 지나가 있었고, 말과 감각과 판단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저 “슬로우, 슬로우”라고 말하며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느림이 무례함이 아니라 상처의 속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해 이후, 미키는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10년 넘게 우리 숙소로 돌아왔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다섯 달. 그는 내 최장수 고객이 되었고, 어느새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여전히 샤워를 꺼려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소극적인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육증한 몸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도 매일아침 낡은 자전거를 타고 모닝 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찾는다.
나를 볼때마다 한가득 미소를 내게 선물해 준다.
우리는 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가끔 함께 바다를 보고, 어쩌다 함께 밥을 먹고, 지루해지는 시간에는 해 질 녘의 노을 앞에서 웃음 짓곤 한다.
새해 첫 달에,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손을 잡고 허그를 하자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유 해브 비컴 마이 패밀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인생에는 서로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마음에 흔적으로 남는 사람들이 있다.
비 오는 날, 예약도 없이 찾아와 내 침대를 차지했던 남자.
그가 지금은 우리 리조트의 한 계절이 되었다.
내 친구 미키는 그렇게 아주 느리게, 아주 조용히 내 인생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다.
그가 건강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