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에서 반끄릇까지 오는 길

하나님의 옆좌석에 앉다

by Surelee 이정곤

태국 남부의 끄라비에서 볼일을 마치고, 내가 머무는 반끄릇으로 돌아오기 위해 방콕행 버스표를 샀다.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버스였기에 터미널에서 네 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했다.

터미널의 빈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어깨를 짓누르던 고단함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기다림은 인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지루함이 내 의자에 덥석 주저앉아 나를 내려다보는 시간이라는 걸 그날 다시 배웠다.


반끄릇(Bankrut).

내가 늘 ‘반그릇의 철학’을 배우는 곳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끄라비에서 무려 450km 떨어진 그곳은 방콕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중간에서 내려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버스는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줄 의무만 챙길 뿐, 내 몸의 상태까지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간파했다.

탑승 직전, 약효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는 불편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손이 말을 듣지 않아 표를 떨어뜨렸다.

누군가의 시선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웅변하듯 태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정도의 민망함은 이미 생활의 일부였다.

Mr. 파킨슨은 요즘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히잡을 쓴 여인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끄라비를 비롯한 태국 남부에는 무슬림들이 많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창가 쪽 자리와 내 자리를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안쪽 자리를 양보하고 창가에 앉았다.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해서

Mr. 파킨슨과 Ms. 시각장애가 나란히 앉아 길을 가게 되었다.

출발 후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몸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떨림이었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파킨슨은 늘 그렇듯 협상을 하지 않는다.

파킨슨이 내 삶에 들어온지 8년째.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가 힘들고, 같은 공간에 같은 자세로 10여분을 지탱하기가 어렵다.

떨림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생각을 과속하게 만든다.

도망칠 수 없는 좌석, 고정된 팔걸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차체.

에어컨 바람은 인정사정없이 싸늘한 냉기를 품어내며 과도하게 차가웠다.

승객들은 일제히 담요를 집어 들었다.

그녀 역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담요를 펴서 몸을 감쌌다.

그 손놀림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보지 못하는 손이 오히려 더 막힘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불안했고, 그녀는 차분했다.

나는 내 몸의 배신 앞에서 허둥댔고,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이미 오래전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였다.

버스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거나 요동칠 때마다

나는 팔걸이를 꽉 붙잡았고,

그녀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춤추는 음악처럼 리듬이 되었다.

나는 공간에 갇혔고,

그녀는 어둠에 갇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요는 그녀 쪽에 머물고 있었다.

담요를 얼굴까지 끌어올린 그녀가

천천히 과자를 꺼내 씹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일정한 속도로 씹는 리듬.

그 소리는 내 불안을 자극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정시켰다.

사람은 꼭 말로만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문득 그녀가 성모 마리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어둠이 그녀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내 몸은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파닥거렸고,

그녀의 몸은 바람에 몸을 맡긴 꽃잎처럼 흔들렸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고요가 있었고,

내 어깨 위에는 광란이 들썩이고 있었다.

지루함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우리는 우연처럼 각자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둔탁한 드럼을 치듯 빠른 템포로 화면을 두드렸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쪼개서라도 지루함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손끝으로 화면을 더듬었다.

마치 시간과 언약을 맺은 사람처럼,

무언가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그녀는 태국인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 순간 침묵은 공백이 아닌 가능성의 여백이 되었다.

그 침묵은

(神)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기도 같았다.

설명되지 않아도 이해되는 기도.

여덟 시간은 그렇게 따박따박 흘렀다.

어두운 공간,어색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색다른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고통은 늘 소리를 내지 않으며,

평온은 반드시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버스는 결국 반끄릇 입구에 나를 내려놓았다.

차문이 열리고,

나는 비틀거리며 내발이 땅에 내려앉는 순간, 기사에게 인사 대신 손을 흔들었다. 파킨슨은 내가 미소짓는 여유조차 챙기지 못하도록 매순간 인색하다.

그녀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그날의 지루함은 색다른 고독이 되었고,

그 고독의 엑셀러레이터는

내 안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 놓았다.

어쩌면 인간은 모두

각자의 감옥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떨림에,

누군가는 어둠에.

그리고 그 감옥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비추지 못한 채

가끔 같은 시간만을 공유한다.

그날 버스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통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고통을 맡기는

성막으로 가려진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옆자리에 앉아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