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위의 그리움

반끄릇 두 번째 이야기

by Surelee 이정곤

자전거 위의 그리움


나는 오늘 허버트 자전거를 탄다.

아침 시간, 자전거를 타고 반끄릇 해안도로를 달리다 문득 허버트가 떠올랐다.

3월까지 이어지는 성수기, 우리 리조트의 자전거들조차 손님들 일정에 맞춰 분주하다.

나는 늘 그렇듯 가장 오래되고 낡은 자전거를 골라 탄다. 좋은 자전거는 손님들에게 양보하고, 운동을 핑계 삼아 남겨진 것들 중 하나를 끌고 나온다.

오늘 내가 타고 있는 이 자전거의 주인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독일인 친구 허버트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녹슨 체인 소리가, 해맑은 웃음으로 묵직하고 둔탁하게 울리던 그의 목소리처럼 겹쳐 들려왔다.

허버트는 독일 경찰로 은퇴한 뒤 우리 리조트에 처음 왔다. 하천 가까이, 가장 조용한 방갈로 하나를 차지하고는 정확히 1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비자 문제로 며칠씩 자리를 비우는 때를 제외하면, 그는 거의 은둔자처럼 그 방갈로를 중심으로 세상을 좁혀 살았다. 다른 유럽인들처럼 수영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모습도,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자전거가 그의 유품임에도 말이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책을 사랑했다.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자주 보였지만, 누군가를 초대해 파티를 하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의 일상은 단순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다녀오거나, 해변가 게코바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는 것. 그것이 그의 즐거움의 전부였던 것처럼 보였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는 활짝 웃었다. 전직 형사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하고 투명한 웃음이었다. 아담한 체구에 유난히 불룩한 배를 가진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인사처럼 배를 가리키며 능숙한 태국어로 “뽐뽀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희화화할 줄 아는 사람의 웃음에는, 삶을 오래 견뎌낸 자만이 가진 너그러움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태국 여자를 곁에 두고 다녔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돌았다. 날마다 어딘가를 다니며 생기가 넘쳤다. 그 모습을 보며, 여자의 온기는 노년의 남자에게도 여전히 삶을 이어주는 고리이며, 물처럼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황소처럼 큰 눈, 담배를 쥐던 손가락의 유난히 긴 손톱, 앞으로 불쑥 나온 배, 영어나 태국어를 막힘없이 할 수 있지만 결코 많이 하지 않던 그의 방식.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과거가 되었다. 그가 죽기 전까지 늘 오토바이 뒤에 함께하던 여자는, 그의 마지막을 보기 몇해 전 이미 곁을 떠난 상태였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며 알게 된 사실은 더 쓸쓸했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그는 평생을 홀로 살아왔고, 고독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낄 즈음, 조용히 생을 마쳤다.

오늘도 나는 허버트의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린다.

이 자전거는 이제 그가 이곳에 살았다는 거의 유일한 증거다.

사람은 떠나도 흔적은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을 누군가 기억해 줄 때, 삶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참으로 덧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허버트가 남긴 것은 공허만은 아니다.

함께 웃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건네던 인사, 스스로의 배를 가리키며 웃던 그 소소한 인간다움. 그것들이 남아 오늘의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나는 오늘도 페달을 밟으며 그를 그리워한다.

고독 속에서도 삶을 견디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자기 속도로 살다 간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가 남긴 자전거 위에서, 나는 비로소 인정(人情)이란 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오래 남는지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