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코코넛 나무의 사연

반끄릇 이야기(3)

by Surelee 이정곤


한국에서의 겨울을 피해 반끄릇에 왔다.

우리 리조트 정원 여기저기에 하늘로 높이 뻗은 코코넛 나무들이 즐비하다. 그 높이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키다리 아저씨들이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꿋꿋하게 세월을 버텨온 존재들이다.

신기하게도 그 높은 키에도 강풍이 불 때면 부러지지 않는다. 휘어질 뿐이다. 육중한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며, 나무들은 한결같이 몸을 흔들어 춤을 추듯 생명을 지탱한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살아내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왜 저리도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이 정원에 코코넛 나무가 더 많았다. 중간중간 나무를 잘라 방갈로를 짓는 데 쓰기도 했다. 사라진 나무 자리에는 사람들이 머물며 쉬어가는 공간이 들어섰다. 베어졌다고 끝은 아니었다. 나무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역할로 남았다.

한 달에 두 번쯤 코코넛을 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굵은 대나무를 길게 연결하고, 그 끝에 낫을 달아 높은 꼭대기의 열매를 베어낸다. 그날이면 정원 여기저기에 코코넛이 나뒹군다. 그것을 한곳에 모아두면 업자들이 개당 15에서 25바트에 사 간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우리는 한 달 7천 바트를 웃도는 전기요금을 충당한다. 나무는 말없이 제 몫을 해낸다.

어쩌다 업자에 따라 훈련된 원숭이가 코코넛을 따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원숭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해진다. 코코넛을 따는 날마다 내 호기심은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처럼 함께 치솟는다. 그렇게 몰입해 사진을 찍은 시간이 벌써 십 년이 넘었지만, 지루하기는커녕 볼 때마다 여전히 신비롭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코코넛 나무들의 자태를 사진에 담고,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며 그 풍경에 젖어본다. 빛의 각도에 따라 나무의 표정은 달라지고, 같은 나무도 전혀 다른 하루를 산다.

코코넛 나무는 버려지는 것이 없다. 열매는 물과 기름이 되고, 껍질은 숯과 연료가 된다. 섬유질은 밧줄이 되고, 잎은 지붕을 엮는다. 줄기와 가지는 가구와 장식품이 된다. 높이 자란 몸은 그늘을 내어주고, 쓰러진 뒤에도 누군가의 삶을 떠받친다. 언제나 자신을 다 쓰지 않고, 남길 줄 안다.

바닷가의 코코넛 나무들은 유독 바다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다. 강풍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등을 돌리지 않고 맞서며 살아가는 방식. 그 태도가 이 나무들을 더 오래 살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을 바라보다 보면, 가득 채우는 삶보다 남겨두는 삶이 더 오래 간다는 생각이 든다. 비워두었기에 흔들릴 수 있고, 흔들리기에 부러지지 않는다. 높이 자랐어도 욕심껏 차지하지 않고, 남겨둔 몫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코코넛 나무들이 춤추고 있는 우리 리조트는,

내가 “반만 채우고 나머지 절반을 가능성의 여백으로 남겨두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반그릇 철학을 배워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나무들은 수시로 몸을 흔든다.

가득 차지 않았기에 가능한 춤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백 속에서 조금씩 안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