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사계의 자리에서

여름편 ― 술과 물의 경계

by Surelee 이정곤

『귀촌, 사계의 자리에서』


― 군남면, 다섯 사람의 여름

여름은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계절이다.
숨이 차도록 덥고,
땀이 날 정도로 솔직하다.

군남면의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텃밭의 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수분을 머금고 팽창했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만큼 더 깊고, 넓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연과 도연 형제는
일찌감치 밭에 상추와 호박, 감자와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작물들이 무성해지자,
그 수확물은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눌 핑계가 되었다.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읍시다”
팔연이 전화를 했다.
“막걸리도 시원하게 냉장고에 있어요.”
재심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면 현희랑 나는 파전을 준비할께요.”

현희네 집 데크 위에,
정곤이 만들어놓은 가즈보가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다섯 사람은 자주 모였다.

삼겹살 위로 고추장을 얹고,
물방울이 맺힌 상추에 감자를 얹고,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이 돌았다.

그 여름밤,
불빛 아래 모인 사람들 사이엔
술보다 더 깊은 말들이 오갔다.

팔연이 말했다.
“술은 사람 마음을 꺼내게 해.
나도 예전엔 말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웃고 있잖아.”

재심이 물었다.
“그럼 물은 뭐죠?
그 꺼낸 마음을 씻어주는 거 아닐까요?”
정곤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린 술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물처럼 서로의 상처를 닦아주고 있는 거겠죠.”

도연은 예전엔 혼자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허전한 저녁, 고요한 거실,
엉클러진 탁자 위에서 혼자 잔을 채우던 때도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매일 새벽, 물을 끓인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이슬 내린 밭을 거닐며 감자잎을 쓰다듬는다.

“요즘은 술보다 물이 좋아.”
도연이 말하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정곤은 글을 쓴다.
낮에는 물처럼 조용히 있고,
밤이면 술처럼 마음이 끓는다.

그는 그날 밤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모두 술이면서, 동시에 물이다.
어떤 날은 뜨겁게 말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흐른다.
삶은 술이 되었다가 물이 되고,
다시 물이 되었다가 술이 된다.”


장마가 지나고,
모기를 피해 안으로 들어온 어느 밤.
도연이 직접 부친 호박전을 내놓았고,
재심이 상추쌈을 정성스럽게 말아 내주었다.

그 밤, 막걸리 한 사발이 돌고,
현희가 조용히 말했다.

“술잔을 들어 정을 나눈다는 말,
이제야 이해가 돼요.”
정곤이 현희를 향해 눈짓으로 구수한 사투리 추임을 재촉했다.
현희가 투덜대다가 응답했다.
"요거슬 마셔불믄 우린 거시기여 잉?"

정곤이 대답했다.
“이렇게 잔이 비워지면,
우린 다시 물처럼 서로를 채워주겠죠.”


군남면의 여름밤은
숲처럼 깊고,
물처럼 부드러웠다.

술로 마음을 꺼내고,
물로 마음을 씻으며,
그들은 그렇게
여름을 살아내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다시 물었다.
“술은 술이고, 물은 물이죠?”

정곤이 웃으며 말했다.
“술은 사람이 되고,
물은 사람이 되는 그 사이,
우리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이제 안다.
술이 필요한 밤이 있고,
물이 필요한 아침이 있다는 것을.
술은 고백이고,
물은 회복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함께한 여름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나를 살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