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때는 흐른다

프랑스 친구들과의 우정 이야기

by Surelee 이정곤

모든 때는 흐른다


태국 반끄릇에서 두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귀국했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물처럼 흘러갔다.
붙잡아 둘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잠시 머물고 또 떠난다.
반끄릇(Bankrut)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삶을 바라보는 한 가지 통찰을 얻었다.
‘삶의 그릇을 절반만 채워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어 단어 ‘반그릇’의 발음이 태국의 작은 해안 마을 이름인 ‘반끄릇’과 거의 같다.
반그릇이라는 말에는 그릇의 절반은 채우고 나머지는 비워 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비워 둔 절반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은 새로운 가능성이 스며드는 틈이다.
이번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 여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은 늘 물처럼 흐른다.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도 있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던 시간도 있지만 결국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 귀국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귀국편 비행기는 3월 12일 밤 10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방콕에 도착하기 위해 당일 저녁 6시에 도착하는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 두었다. 일정만 보면 무리가 없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태국에서 기차를 타며 몇 차례 연착을 겪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기차가 늦어 공항 도착이 지연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더 이른 기차를 선택했다. 12일 새벽 4시경 방콕에 도착하는 기차였다.
그 선택으로 귀국길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기차 안에서 6시간을 보내고 공항에서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18시간을 머물렀다. 비행기 안에서 5시간, 인천공항에서 다시 2시간 반, 그리고 버스 안에서 또 4시간이 이어졌다. 단순히 시간을 더해 보아도 하루가 훌쩍 넘는 여정이었다.
수완나품 공항에서의 기다림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 공항 의자에 앉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어도 공항은 완전히 잠들지 않았다. 출발 게이트 앞에는 가방을 베고 잠든 여행자들이 있었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거대한 공항은 밤에도 쉬지 않는 도시처럼 보였다.
지루한 시간은 내 시선 앞에서 심통을 부리지 못했다. 모든 때는 흐른다는 나의 확신 앞에서 마냥 불편한 시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몸을 움직였다. 공항 안을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 걷기 기록을 확인하려고 휴대전화에 깔아 둔 앱이 내가 공항 안을 빙빙 돌며 10킬로미터가 넘게 걸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은 단순하다. 모든 때는 반드시 지나간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지루함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어느 순간 기다림이라는 생각도 희미해지고 시간은 다시 제 속도로 흘러간다.
이번 여행에서 마음이 가장 따뜻해졌던 순간은 프랑스 친구들과 나누었던 교감이었다.
그들은 시간을 보내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 사람들이었다.
반끄릇에서 지내는 동안 늦은 오후가 되면 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도미니크와 세르주, 그리고 이사벨라 부부였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리조트의 조용한 정원에 모였다. 작은 쇠공을 꺼내 들고 펠탕크 게임을 시작했다.
공이 굴러가는 동안 농담이 오갔고 웃음이 이어졌다. 누군가의 공이 목표 가까이에 멈추면 모두가 환호했고,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면 그 또한 웃음이 되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어느 날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공이 굴러가는 장면과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을 조금씩 촬영했다. 며칠 동안 모은 장면을 엮어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저녁 무렵 그들에게 그 영상을 보여 주었다. 작은 화면 속에서 그들의 웃음이 다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조용히 바라보던 사람들이 곧 크게 웃기 시작했다. 서로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손뼉을 치며 장면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영상을 만드는 동안에는 단순히 기록을 남긴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시간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일상을 담은 작은 영상이 그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된 셈이었다.
영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의 웃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 웃음 덕분에 나 역시 한참을 웃고 있었다.
반끄릇에서 보낸 시간 가운데 그 장면이 오래 남아 있다. 그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거나 삶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하루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의 삶도 그릇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 하면 금세 넘쳐 흐르지만 조금 비워 두면 여유가 생긴다.
반끄릇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채우기보다 조금의 공간을 남겨 두는 삶이다. 그 공간이 있어야 사람은 숨을 고르고 주변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웃음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프랑스 친구들의 늦은 오후는 그런 여유를 보여 주는 시간처럼 보였다.
귀국길의 긴 기다림 속에서도 그 장면이 여러 번 떠올랐다. 반그릇의 여유가 있다면 시간은 조금 더 부드럽게 흐를 것 같았다.
오늘 집에 돌아왔는데 벌써부터 그들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반끄릇의 늦은 오후와 함께 그들의 따뜻한 눈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