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춤

열광의 허구에 대하여

by Surelee 이정곤


도무지 식지 앓는 열기가 있다.
무엇을 향해 타오르는지도 모르고, 누구를 위해 끓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끓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당해지는 열기, 차라리 광기에 맞닿은 욕망의 허구.
사람들은 그걸 ‘열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내안의 존재가 묻는다.
그 열정은 누구의 것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쉽게 뜨거워진다.
특정 사안에 분노하고, 누군가의 말에 감동하며, 나처럼 사람들 역시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우리 안에 있던 공허는 잠시 멈춘다.
그러나 그 열광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 주엔 또 다른 분노, 새로운 유행, 낯선 이름이 도가니의 불쏘시개가 된다.
이 시대는 ‘타오름’을 지나치게 추종한다. 그 욕망을 신앙처럼 숭배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폭죽놀이를 좋아한다. 그 가짜 불꽃은 허상의 상징이다. 지속 가능한 진심보다 순간의 폭발을, 고요한 깊이보다 짧고 강렬한 자극을 원한다.
SNS는 오늘의 도가니를 팔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몸을 던진다.
그 안에서 춤추는 우리는 스스로를 ‘각성된 시민’이라 착각하며
사실은 외로움과 허기를 끓는 물로 눌러앉히고 있을 뿐이다.
욕망은 형상의 옷을 입고 우상이 된다.
상품보다 돋보이는 포장지처럼 반짝이는 무늬만 정의, 유명인의 말투를 흉내 낸 목소리,
누구를 미워해도 괜찮다는 혐오면허를 발급하는 극단적 신념들.
우리는 그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끌려간다.
욕망은 언제나 우리보다 빠르다.
그 욕망에 휘말려 우리는 또 한 번 누군가를 연단에 올리고,
또 한 번 누군가를 도가니 속에 밀어넣는다.
그 열기 속에서 우리는 안도한다.
‘나는 옳다’는 착각,
‘나는 함께다’라는 위안,
‘나는 타오르고 있다’는 생의 감각.
그러나 끝나고 나면 늘 씁쓸하다.
정작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가장 먼저 잊히는 것은 타오른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쯤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싶다.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끓는 냄비를 그저 바라보는 자리.
그 자리에서 비로소 ‘왜 끓는가’보다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끓게 만들었는가’를 묻고 싶다.
열광은 가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자주, 너무 쉽게,
그 열기 속으로 몸을 던지는 세상은
어딘가 깊이 병들어 있다.
가짜 불꽃은 진실을 태운다.
그 불이 꺼지고 나면, 남는 건 침묵뿐이다.
그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묻는다.
‘나는 왜 그렇게 뜨겁게 움직였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