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친구와 살아가는 법
어쩌다 Mr. 파킨슨과 친구로 살게 됐다.
8년 전, 어느 날 불쑥 그가 찾아왔다.
어쩌면 그의 방문은 훨씬 오래전부터 예고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서울 아산병원 신경과 진료실.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공식적으로’ 마주했다.
첫 인상은 흐릿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히 기억난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 오래 머물 작정이라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은 낯설고도 묘하게 담담했다.
처음엔 그를 숨기려 했다.
그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며
몸을, 감정을, 일상을 애써 정상처럼 보이게 꾸몄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잃은 것은 ‘익숙함’이었다.
젓가락이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놓친 것이 아니라, ‘놓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손가락 사이의 거리감이 어긋나 있었고, 중심은 자꾸 허공을 집었다.
나는 태권도를 해서 민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허공을 더듬는 내 손끝은
어디가 ‘나’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파킨슨은 그렇게 시작됐다.
작고 은밀한 반란처럼.
목덜미에서 어깨로, 팔로…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었다.
어느 날, 아침 산책 중 날파리 하나가 스쳤을 뿐인데
내 몸은 과민하게 움찔했다.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 내게는 위협이었다.
갑작스런 소리, 빛, 낯선 기류까지
몸은 매번 과민반응을 일으켰고, 나는 그 안에서 점점 위축되어갔다.
양말을 신으려다 멈춰 선 날이 있다.
명령은 이미 내렸는데,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멈춰 있었고, 생각은 다음 동작으로 건너가 있었다.
그 틈에서 조급함이 피어났다.
조급함은 떨림을 부르고, 떨림은 다시 불안을 키운다.
나는 단지 양말 하나를 신으려 했을 뿐인데,
그 작은 동작이 하루를 무너뜨렸다.
말수도 줄었다.
목소리가 작아진 건 단지 성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혹시 내 말이 닿지 않을까봐,
아예 침묵을 선택하는 일이 늘어났다.
속으로 기어들어간 말들.
그 안에서 작은 우울이 자라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내 것이지만,
이제는 내 뜻을 자주 거절한다.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처럼,
매일을 낯선 집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지친 날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훈련이 된다.
유지, 그 자체가 고통이다. 일정한 자세, 동작을 반복하여 지속하는 게 힘들다니...
“별일 없었는데 피곤해.”
그 말이 습관처럼 입에 맴돈다.
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더 지친 하루였다.
이젠 모든 동작이 명령어가 되었다.
일어나라, 손을 뻗어라, 걸어라, 말해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지시와 확인이 필요한 일들이다.
그리고 그 명령이 도중에 멈춰설 때마다
나는 이렇듯 ‘작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나의 작은 기도처럼.
그저 양말을 신을 수 있는 팔,
숟가락을 들 수 있는 손,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허리.
이 작고 단순한 것들이 내게는 존엄이고, 희망이다.
몸에서 작은 감각들이 서서히 기운을 잃게되더라도
마음만은 먼저 포기하지 않기를.
그것이 지금 내가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는,
느린 친구와 살아가는 법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