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회 비행 이야기

돌아가는 길이 남긴 온기

by Surelee 이정곤

그 이름은 김선회.

나는 그를 ‘선회비행’이라 불렀다.
선회비행이란, 직진이 아닌 곡선을 그리며 돌아가는 비행이다.
속도보다 방향을 택하고, 정답보다 해답을 좇는 방식이다.
그의 삶이 꼭 그랬다.
멀어도, 굽이져도, 돌아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회계사지만, 사무실에 머무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그는 걷는 사람이다.
그것도 단순한 직선의 길 위의 여행자가 아니라,
곡선의 길 위에 인생을 포갠 사람.
10여 년 동안 5만 킬로미터,
대한민국 방방곡곡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그 발자국마다 사연이 묻어 있고, 그 걸음마다 바람이 스며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나 여행을 함께 한 곳은 태국의 끄라비, 뜨거운 햇살 아래 아오낭 해변에서였다.
우리는 피피섬으로 향하는 롱테일보트를 렌트했다.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를 태운 작은 배의 엔진고장으로 예기치 못한 조난을 겪게 되었다.
검푸른 파도 위,
두려움이 엄습한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파도는 거칠었고,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차가웠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나를 찬바람에서 멀어진 쪽으로 이끌었다.
자신이 있던 자리를 내게 내어주며, 그는 몸을 더 깊이 파도 쪽으로 틀었다.
그 짧은 순간의 행동,
그 침묵 속의 배려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가장 뜨겁고, 가장 조용한 온기로 남아 있다.
그는 ‘설렁설렁’이라는 딱지를 자처했지만,
그 속엔 흘러넘치는 배려가 있었다.
자신에겐 대충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타인의 일에는 누구보다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했다.
그의 설렁설렁함은 결코 무성의함이 아니었다.
그건 삶을 가볍게 품는 지혜였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온기였다.
그가 내 초대에 응해, 열흘간 우리 집에 머물렀다.
아침이면 동네를 빙그르 돌다 들어왔고,
밤이면 화로 앞에 앉아 막걸리를 기울였다.
식사를 자주 거르면서도
막걸리 잔을 들고 나누던 그의 이야기들은
한 끼 식사보다 더 진하고 풍성했다.
그의 농담엔 오래된 서정이 깃들어 있었고,
그의 실수엔 인간미가 배어 있었다.
그는 말이 많았지만, 말 속에 헛된 말은 없었다.
웃고 떠드는 틈 사이에도,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냉장고엔 막걸리 한 병을 남기고,
마당엔 발자국 몇 개를 남긴 채
바람처럼 다시 길을 따라 사라졌다.
화로는 식었고,
쓰레기통엔 빈 막걸리 병 하나.
그의 흔적이 남긴 허전함은
이상하게도 포근했다.
그가 떠난 후, 문득
그가 걷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가 택했던 그 돌아가는 길,
그 느리고 엉뚱해 보이던 걸음이
사실은 가장 깊은 삶의 궤적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는 떠돌았지만,
관계만큼은 허투루 흘려보낸 적이 없었다.
길 위에 있던 그 순간에도,
내 곁에 머문 그 시간에도,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온전히 있어주었다.
그가 떠난 자리는 비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마음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 따뜻함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도 이제는 조금 돌아가도 좋겠다.
빠른 길이 아니어도,
조금 더 깊이 사람을 바라보고,
조금 더 여유롭게 삶을 느끼며 걸어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그에게 붙여준 별명 하나를 메모장에 적었다.


“Mr. 배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삶을 설렁설렁 살아가면서도,
배려의 중심을 결코 놓치지 않는 사람.
말투는 가볍지만, 그 속에 단단한 진심을 숨겨둔 사람.
떠도는 삶 속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엔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
그가 다시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그를 위해 화로에 새 불을 지필 날을 기다리며,
막걸리 한 잔을 따른다.
그리고 나도
그가 걸어간 길 위에
나만의 선회비행을 시작해 본다.
보고 싶다, 친구여.
돌아가는 걸음이 남긴 너의 온기가
지금도 내 하루에 잔잔히 스며든다.
어딘가 휘어진 그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기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