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나를 깊이 바라보는 힘 (2)

통증 — 숨겨온 마음의 상처

by Surelee 이정곤

마음의 문을 열 때 찾아오는 것

통찰은 마음속 불을 켜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불빛이 밝아질수록, 오히려 더 진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바로 통증이다.
진짜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눈부심이 아니라 오래 숨어 있던 상처다.
한 상담 모임에서였다. 진행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자신을 가장 미워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혔다.
그날 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를 멈추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
스쳐 가는 벚꽃, 어스름한 저녁 하늘. 그리고 떠오른 한 장면.
몇 해 전 어느 봄밤,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주저앉았던 날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현희는 오랫동안 자신을 미워했다.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왜 그 상황을 그냥 두고만 봤을까.’
그 기억은 그녀 안에 늘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꺼내면 무너질 것 같았고,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 처음으로 그 기억을 꺼내어 마음껏 울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에게 속삭일 수 있었다.
“그땐 너무 무서웠던 거야. 말할 힘이 없었던 거지.”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자신을 탓하기보다, 이해해주는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통증은 마음이 살아 있다는 신호다. 무뎌진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아프다. 하지만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굳어 있던 마음이 풀리고 있다는 뜻이니까. 통증은 억누르고 외면하던 감정이 ‘이제 나도 좀 봐줘’라며 손을 내미는 순간이다.

재심은 늘 남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병원 민원 대응, 실적 압박, 팀원 챙기기까지. 어느 날, 후배가 툭 던진 말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언니는 늘 도와주기만 해요. 언니 얘기는, 누가 들어줘요?”
그 말에 재심은 순간 숨이 막혔다.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맞아.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
그제야 그녀는 알게 됐다.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몰라준 게 아니라,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음을.
통증은 적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가 아닌 ‘이해’를 요청하는 감정의 몸짓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증과 싸우는 대신, 함께 머물 용기를 내야 한다. 눈물이 흐를 땐 흘려보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보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글을 쓰는 정곤은 종종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무엇을 참아왔는가.”
그는 말한다.
“누구도 나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나조차 그 슬픔을 모른 척하면 더 고립된다.”
삶의 깊은 지점에서 우리는 결국 하나의 문을 만나게 된다.
통증을 외면할 것인가, 손잡고 지나갈 것인가.
진짜 삶은,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방어하는 삶이 아니라
아픔마저 끌어안고 살아내는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의 중심엔 ‘통’이 있다.
나와 나 사이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는 순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