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나를 깊이 바라보는 힘(3)

통용 — 나만의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기

by Surelee 이정곤

세상은 다그치듯 매일 말을 건넨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왜 너는 그런 모습이니?”
“지금 이게 맞는 걸까?”
그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쉽게 움츠러든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답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정작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간다. 하지만 통찰과 통증을 지나온 사람은 안다.
이제는 나만의 언어로 대답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통용(通用)’은 단순히 소통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밝혀내는 일이다.
누구의 말이 아니라, 내가 살아낸 진실에서 나온 말.
그 말은 때로 다른 이의 마음을 흔들고,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정곤은 오래도록 자신의 글이 별것 아니라 여겼다.
댓글 하나 없는 칼럼, 조회 수 몇 번 안 찍힌 글, 메모장에만 잠든 시들.
그는 자신이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날, 예전에 써둔 글을 우연히 다시 읽다가 멈춰 섰다.
“어떻게 이런 말을 썼지?”
그 문장에는 감정이 겹겹이 녹아 있었고, 지금의 자신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정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그는 이미 세상과 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응답은 없었지만, 그것은 통용의 시작이었다.
현희도 달라졌다. 상담소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말도 바뀌어 있었다.
예전엔 교과서처럼 위로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이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말에는 이제 자기 경험이 담겨 있었다.
부끄러움, 분노, 무력감, 그리고 그 감정을 지나온 시간까지.
그녀는 자신의 언어로 말했다.
그 말은 위로였고, 힘이었고,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숨결이었다.
재심도 어느 날 변화를 겪었다.
병원 회의 시간, 그는 늘 조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환자의 불만을 논의하던 어느 날,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그 환자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 말에 회의실은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심은 그 순간 알았다.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것은 통찰을 지나 통증을 겪고 난 후에야 도달한 언어였다.
통용은 남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그건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나의 방식,
진심이 담긴 말, 나로부터 길어 올린 소리다.
그런 언어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린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전하며,
타인의 마음에 조용히 닿는다.
우리가 세상과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건
유창한 말이 아니다.
경험에서 길어낸 말, 아픔을 통과한 말,
진심으로 건네는 말 한 줄.
그 언어는 통찰을 삶으로,
통증을 성장으로 바꾸는 진짜 힘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