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항공 산업 속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는 스타트업들
항공사에서 일하게 되기 전부터 항공산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느낌은 '엉덩이가 무거운 산업'이었다. 일단 그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포지션을 취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조직 문화도 전통적인, 또는 경직된 이미지였던 것이 사실이다. 항공산업 내에서 창업을 한다라고 하면 보통 항공사를 새로 차린다던지(...) 하는 큰 규모의 창업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여행/레저산업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수준을 생각하기가 쉽다. 실제로 항공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에어프레미아나, 여행산업의 트렌드를 '경험'의 영역으로 접근하여 승승장구했던 마이리얼트립 같은 곳들이 이런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창업 생태계나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다가 항공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이런 영역하고 거리가 멀어진 것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 출발해서, 과연 항공업은 기업가정신, 파괴적 혁신 같은 시대를 앞서가거나 변화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안정적인 산업'인 것일까? 라는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게 되었다.
글을 쓰기로 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운송 관련 기술과 IT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항공 수요 또한 다변화되면서 이 무거운 산업에서도 크고 작은 혁신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항공 산업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라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항공여객 산업'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크게 '소비자 경험을 위한 혁신', '산업 플레이어들의 수익 개선을 위한 혁신', 마지막으로는 '항공운송 기술에 대한 혁신'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1) 항공 여행에 대한 소비자 경험을 혁신하는 스타트업
항공여객 분야는 항공기를 탑승해서 내리기까지의 과정 뿐만 아니라, 예약/발권, 기내 서비스, 고객 커뮤니케이션까지의 소비자 경험을 포괄하는 서비스 비즈니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자가 여행의 한 과정에서 항공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경험을 새롭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들이 IT 분야와 접목하여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젯블루(Jetblue)가 CVC로 투자하고 제휴하고 있는 글래들리(Gladly)는 Seam-less Customer Service 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이다. 고객은 전화, SNS, 이메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의 문의를 남기고, 항공사는 각 채널과 연결된 글래들리의 단일 플랫폼을 통해 고객 요청이나 문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팔로업할 수 있어, 서로 간의 중복된 커뮤니케이션이나 오안내를 방지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이 원하는 이슈에 대해 정확한 담당 부서로 연결해주는 등 고객센터 업무에서 흔히 발생하는 불필요한 지연을 방지해주는 효과를 주고 있다. 콜센터 경험을 통해 항공권이나 항공 서비스 이용의 복잡성이 얼마나 고객과 항공사 모두를 번거롭게 하는지 알고 있기에,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인상 깊다.
2) 항공사 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스타트업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활용하여 항공사들의 수익성을 높여주는 스타트업이나,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항공사의 특정 서비스 등을 아웃소싱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들도 있다. 특히 항공사들의 수요 예측은 오랜 시간 산업이 발전해오면서 고도화되어 왔지만,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항공 수요도 다양화됨에 따라 시장에 적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2013년에 창업하여 작년에 1000만 달러 규모의 세컨 라운드 투자를 유치한 Flyr는 기존의 다양한 RM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여 표준화한 자체 RM 시스템인 Cirrus 플랫폼을 통해 클라이언트인 항공사들이 더 정확하게 경쟁사 가격과 시장 동향을 추적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가격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시장 상황의 변동이나 유통 채널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을 세팅할 수 있는 Dynamic Pricing을 지향하고 있다.
이 플랫폼의 디테일한 구성에 대해서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최근 항공운임이 점점 맞춤형, 실시간, 네트워크 수익 극대화라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트렌드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다.
3) 항공운송 분야 자체를 혁신하는 기술 스타트업
쉽게 말하면 항공 스타트업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곳들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스타트업들은 '거대한 항공기로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전통적인 항공운송의 패러다임 자체에 도전하고 있다. 이 영역은 어떻게 보면 '항공여객'보다는 '운송' 분야 혁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 결국 이런 운송 분야의 혁신이 항공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 범주에 포함하여 사례를 찾아보았다.
특히나 이번 CES2020에서 선보인 현대자동차의 'S-A1' 공개로 인해 더욱 눈길을 끌게 된 PAV (개인용항공기) 시장에서 스타트업들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PAV 개발에 뛰어들고 있었는데, 한화시스템이 최근 지분 투자로 참여한 미국 스타트업인 Overair(오버에어)도 이 중 하나이다. 개인 항공기 기존 전통 항공/운송 분야의 메인 플레이어들이 PAV 시장에 관심을 두고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 기술 스타트업들의 스케일업과 엑싯 전망이 밝아보인다.
글을 쓰며 흥미로웠던 케이스는 기존 전통 산업 뿐만 아니라 항공사들이 뛰어들고 있는 스타트업과의 협력이었다. 꽤 여러 항공사들이 CVC (Coperate venture capital)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미주 항공사 중 Jetblue가 가장 활발하게 이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Jetblue Technonogy Venture라는 이름의 CVC 조직을 통해 약 20여개의 신생 벤처들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진그룹이 올해 2월 미국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플러그앤드플레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한다.
높은 비용에 경쟁강도는 높아 타 산업에 비해 산업 평균 수익률이 낮은 축에 속하면서도 대외적 변수의 영향이 큰 항공산업이기에, 과거 경영학에선 항공산업이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초과 이윤을 달성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산업으로 치부되어 왔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항공사들의 포화 경쟁 속에서 영업이익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 회사들과의 성과급 비중을 비교하면 직장인으로써 눈물이 주륵...)
하지만 이제는 특정 산업이 안정적이다, 특정 산업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무조건 담보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에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기꺼이 자원을 투자하며 반응하는 기업이라면, 또는 개인이라면 혁신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http://news.bizwatch.co.kr/article/industry/2020/02/20/0004
https://travelandmobility.tech/lists/airline-startup-investments/
https://www.airport-technology.com/features/aviation-tech-startu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