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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May 28. 2022

내가 제일 잘 나가

자기 PR이 전부인 천조국에서 살아남기

(메인 사진: 학기 마무리하고 다녀왔던 Hanauma Bay 하나우마 베이. 하와이 주립대 학생들은 거주민resident로 치기 때문에 입장료나 사전 예약 없이 입장 가능하다.)


늘 그렇듯 토할 것 같이 바빴던 학기 말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학원이나 사립 교육 시설 제외... 거긴 연중무휴이므로)으로서 내가 느끼기에 이 분야에서 몸 담는 것의 가장 큰 메리트는 다름 아니라 방학이 존재한다는 사실 같다. 직장인이라면 거의 퇴사를 무릅써야만 가능한 장기 휴가가 우리에게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니 말이다. 게다가 교수가 되면 7년마다 1년짜리 안식년까지 돌아오니(이걸 나눠서 3.5년마다 반년씩 쓸 수도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분야에 몸 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의 학사일정이 3월에 1학기가 시작해 여름방학이 길고 9월에 2학기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학사일정은 9월에 시작하는 가을학기가 1학기이고 1월에 시작하는 봄 학기를 2학기로 친다. 가을학기와 봄학기 사이, 즉 12월 중순부터 1월 초순까지 짧게는 3주, 길게는 4주에 해당하는 겨울방학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9월부터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를 학사연도로 계산한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2022년 학사연도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미국은 늘 2021-22 학사연도, 2022-23 학사연도 식으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5월 말~6월 초부터 8월 말에 해당하는 약 2-3개월에 해당하는 여름방학이 미국 학사일정에서는 진짜 방학이다(참고: 주마다 다르지만 semester가 아니라 quarter제로 돌아가는 학교의 경우 1년을 네 학기로 나눠서 돌아간다).


학교마다, 또 교수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여름방학 동안에는 교수든 학생이든 다들 학기 중에 바빠서 한쪽으로 제쳐 두었던 자기 연구에 몰두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학기 중에 비해 연락이 잘 안 되고, 되더라도 아주 느리게 답신이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지금처럼 막 정신없는 학기 말이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는 다들 힘든 학기 말에 질려 있기 때문인지 아주 긴급한 사항이 아닌 이상 메일이나 문자를 잘 안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게으름을 피우며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싶지만, 여름방학 동안 해야 할 실험의 IRB 승인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어 꾸역꾸역 카페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다. (IRB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제 전 포스트를 읽어보세요!) 매월 1일에 열리는 IRB 심사는 그 달 심사를 놓치면 다음 달 1일까지 무려 한 달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6월 1일 심사에 맞춰 내려면 작업 가능한 시일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지만 유학을 온 후로 나의 시간은 정말 말 그대로 '순삭'인 것 같다. 하루에도 너무 많은 글을 읽고 쓰고 분석을 해야 하다 보니, 한 번은 친구 한 명이 우리 언제 밥 먹냐고 물어오길래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언제였나 계산해보니 한 달 전인 경우도 있었다. '우리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약속해놓고 각자 너무 바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엄마 생신도 까먹고 있다가 생신 전날 영상 통화를 하던 중에 그날 받으신 꽃을 자랑하는 엄마께 '웬 꽃이냐'며 정신 나간 소리를 했던 나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구글 캘린더에는 음력 날짜가 뜨지 않고, 한국과 미국 시차가 있으니 나는 아직 엄마 생신이 며칠 남았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차라리 생일 한참 전이나 후에 통화했으면 괜찮았을 텐데(아 그래도 여전히 불효 막심한 건 마찬가지인가...), 생신 바로 전날 전화해서는 웬 꽃이냐 물은 것만으로도 생신을 잊어버린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어 버려서 너무 죄송했었다.


여하튼, 박사 과정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를 바다 건너 천조국에서 보내면서 나는 인생의 진리 하나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마음 가짐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건 사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나 성격도 큰 몫을 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부분이긴 하다. 어떤 사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런 근자감을 뿜뿜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미국에서 나와 친한 대부분의 미국인 친구들이 이런 유형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내가 만난 대부분의 동양인 학생들은 (나 포함)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동서양이 다른 것을 보면 이것은 일단 문화적 차이가 굉장히 주요한 요소인 것 같기는 하다.




일례로 내가 아는 한 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었다.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영어 모국어 화자 집단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일본어 모국어 화자 집단을 비교했는데, 두 집단 모두 사실 외국어 실력이 출중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전자에 비해 스스로의 실력을 낮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서구권 학생들은 실제 자신의 실력보다 더 우수하게 자신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권 학생들은 곧잘 하면서도 자신의 실력이 별로 좋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낮춰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서구 문화권이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을 중시하는 반면 동양권은 집단 구성원들과의 조화를 중시하다 보니 늘 타인과 비교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이런 점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인 학생들은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고 혹 자신이 뭘 잘 못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탓보다는 타인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하던 작년에는 한 학생이 '이 수업은 오프라인으로 했으면 내가 더 잘 이해했을 텐데 온라인이어서 성적이 이렇게밖에 안나온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또 다른 학생은 '교수가 더 잘 설명해줘야 하는데 나를 이해 못 시켜서 내가 이렇게밖에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왜 자기가 못하는 걸 남 탓을 하나 의아했다.


반면 동양 학생들은 자신이 이해를 못 했을 때 자신을 책망할 구석부터 찾는다. 내가 좀 더 논문을 자세히 읽었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교수님께 질문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스스로를 타박한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자책도 많이 하고 나 자신이 유학에 (나아가 학계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라 생각했다(지금도 아주 크게 이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다). 늘 자신감 넘치는 미국인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여기서 제일 멍청하고 제일 못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들과 같이 수업도 듣고 연구도 진행하다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들의 실력이 크게 출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에 낙제해서 동일한 수업을 또 듣는 애들도 있고, 무슨 연구를 같이 하고 싶다며 교수에게 자신감 가득으로 제안서를 보냈는데 교수가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절한 애들도 있었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나 자신의 행복과 안정을 찾으면 안 되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유학 와서 낙제를 한 적도 없고, 교수로부터 제안서를 거절당한 적도 없으니, 내 사정이 그들보다 나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나라 말로 하는데도 그 정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결코 대학원생으로서의 내 능력이 크게 뒤쳐지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지난 학기에서야) 겨우 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학자로서의 내 능력을 의심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난 학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끝없는 자문과 자책의 연속이었던 지난 2년.




흑백논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양극단의 선택지에서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실력이 출중한데 너무 겸손해서 끊임없이 자기 의심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실력은 그저 그래도 폭풍 근자감을 갖고 자뻑 모드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이유로 일단 후자가 인생을 훨씬 행복하게 산다. 내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뭐가 잘 안 되더라도 내 탓하면서 자학하기보다는 '아 이번엔 운이 안 좋았다'며 후일을 기약한다. 무조건 남 탓하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불운과 실패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다 보면 우울증 빠지기 십상이다. 특히나 한국과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또한 근자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실제 능력치보다 높게 잡다 보니 겁 없이 도전을 잘한다. 내 생각에는 이게 진짜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가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영원히 있는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면 애초에 기회조차 없다. 그렇지만 한 번 해보지 뭐! 하고 도전을 하면 실패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지만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인 학생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학기말이면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자기 연구를 간략히 설명한 제안서나 초록(abstract)을 써서 funding (연구비)를 신청하거나 학술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는데, 되든 안되든 일단 써서 내는 애들은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연구비를 타낼 기회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기회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곧잘 '내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어서 어디 내봤자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지레짐작하고 도전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 와서야 그런 내 태도가 얼마나 숱한 기회를 땅바닥에 떨어지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근자감을 갖고 사는 것이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잘 났다.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내가 제일 성실하고 내가 제일 현명하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각종 SNS에서 타인들의 일상을 너무나도 쉽게 엿볼 수 있는 요즘 시대에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한국처럼 동양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이런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어차피 인생은 기니까, 매일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날마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날마다 조금씩 더 많은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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