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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May 29. 2022

시간을 다스린다는 착각

올리버 버크먼 <4000주>

거의 4년 가까이 썼던 애플 워치가 깨졌다. 요가원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느라 라커룸에 애플 워치를 던지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바로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시계 없이 좀 더 살아보기로 했다. 애플 워치 없는 생활은 초반에 많이 어색했다. 그런데 3주 정도 지나니 신기하게 불편함보다는 후련함과 해방감이 생긴다. 시도 때도 울리는 카톡 알림, 슬랙(업무용 메신저) 알림, 전화 알림, 메일 알림, 캘린더 알림, 각종 인증을 종용하는 알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알림 등... 심지어 일어나라는 명령, 숨을 쉬라는 명령까지 더해진 알림에 점철된 삶이었다 지난 4년은. 물론 알림의 on-off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애플 워치의 효용을 생각하며- 알림에 복종하는 삶을 택하게 된 게다.


애플 워치를 사면 활동량을  모양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운동 시간, 소모 칼로리, 일어서는 횟수). 한때는  링을 채우는 재미로 살았다. 남들과 경쟁하는 재미로 움직이는 것에 혈안이 되었고, 채우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괜스레 속상하고 의욕이 떨어졌다. 나아가 야근이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링을 채우지 못하는 날엔 내일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죄책감이 쌓여  모든 것을 때려쳐버리겠다는 마음이 발동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위험 신호였던  같다.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행위의 연속. 시각화와 수치화의 효용이 무너지는 순간 아닌가. <4000>라는 책을 읽고, 애플 워치를 깨버리고, 시계 없는 삶을 사는 나의 요즘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4000주>라는 책은 생산성의 끝까지 가본 사람(생산성 중독자)이 지난날을 돌아보고, '생산성이라는 덫'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시간관리, 생산성에 진심이었던 사람이 각종 서적을 참고하여 쓴 책이라서 구절구절 공감하며 읽었다.  아래의 인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또한 나의 인생 목표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가치에 맞춰 매일의 업무와 할 일들을 빼곡히 줄 세웠다. 이런 방법들을 따라 하면서 나는 바쁜 일정이 깔끔하게 정돈되니 삶, 나의 능력을 최고치로 펼치면서도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효율성의 최고 단계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착각하며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하지만 나는 효율성의 최고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고,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행해졌다."


책을 읽다 보면, 예상 가능한 독자 질문들이 있다. '그래서, 시간관리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시간을 관리하라는 책이 아니라, 사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고쳐보라는 의미의 책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며, 시간의 유한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 맥락 없이 이해하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늘 "미래의 나"를 염두에 두고, 현재 직면한 감정을 회피하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 관리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나는 웬만하면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면서 충실히 살고 싶다. 1년 동안 책 100권을 읽은 나의 모습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이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고를 소중히 간직하고,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모든 찰나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받은 편지함의 이메일은 비우기가 무섭게 채워지고 다이어리 속 일정이 반으로 줄 일은 없을 것이며, 회사와 집에서 내가 해야 할 임무를 완전히 수행하고 쉴 수 있는 날이나 데드라인을 놓치거나 실수로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주는 그런 신기한 날들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바쁜 생활에 완전히 적응할 때에 마침내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할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이 모든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인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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