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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Jun 02. 2022

책은 결국 책장을 떠나야 해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사실 내 취향의 소설이 아니었다. 읽기 전부터 편견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서점, ~베이커리, ~잡화점, ~편의점 등의 제목을 가진 소설들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니 묘하게 거부하고 싶었다. 영국식 유머, 양자역학의 다중우주, 철학자의 사상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부터였을 거야, 이때부터 흥미롭게 빠져들었다. 어떻게 보면 클리셰처럼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 구조와 결말을 빛나게 한 건 작가가 가진 디테일의 힘이었음을! 책장을 접느라 너덜 해진 책을 보니, 읽어보길 잘했다. 아, 물론 원서로 말이다! 번역 버전도 궁금하긴 하다.


책 전반이 우울한 편이다. 책을 지배하는 우울한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관찰자, 이방인의 감정을 주인공인 '노라'로부터 느껴졌기에 그런 것 아닐까. 마치, 인스타그램 피드 속 멋진 이들이 공유하는 삶의 편린을, 행복의 전부인 양 선망하는 많은 이의 모습처럼. 그곳에 행복이 있을 것 같았는데, 도착해보니 아무것도 없어 곧 공허한 느낌. 여러 삶을 여행하는 노라의 모습을 보며, 과거 후회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후회의 감정과 잘 작별한 것 같아서.


물론 모두가 책을 읽기 전에 예상하듯,  책의 결말은 예측 가능하다. 교훈도 예측 가능해. 구태여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책을 읽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비유, 위로의 글귀와 조우할  있어서 아닌가. 상황에 따라 어떤 문장은 그냥 지나치게 되고, 아무도 관심 없는 문장과 비유도 어떤 날엔 콕콕 박힌다. 최근의 나는  지쳐있어서 어느 정도 노라의 우울공감할  있어서 그런지 삶에 대한 비유, 행복에 대한 정의가 깊이 와닿았다.


왜 하필 책의 배경이 라이브러리일까.(일단,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얘기는 쓸 수 없지만-) 라이브러리는 일단 책장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 책장엔 책이 꽂혀 있다. 노라에게 그 책은 그저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고, 가능성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는 읽혀야 할 그 책이, 오랫동안 책장을 차지한다면? 하나의 가능성처럼 여겨졌던 그 선택이 마음의 부채와 후회로 남는다. 아, 진작 좀 들여다볼걸. 라이브러리는 곧 후회의 공간이 되었다. 여러 책을 고른 노라는 매 순간이 행복하지 못했을까. 그건, 하나의 공허감이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면, 행복하겠다'는 가설이 들어맞지 않았으니까. 현생보다 더한 고통도 마주했다.


돌고 돌아 이야기가 길었는데, 행복을 목적으로 바라보면 인생은 고달프다. 인생 자체가 부침의 연속 아닌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행복이 지속되는 생은 단언컨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 사랑, 그리고 현재에 그나마 감사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나를 부침의 골짜기에서 끌어올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껴보자. 책을 쌓아두지 말고, 책을 펴서 읽고, 또 떠나보내자. 우린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

행복은 미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덕 자체다.
우리가 욕망을 억제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기 때문에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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