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위해 밥을 짓는 리츄얼의 중요성
아빠는 “먹어 치우자”, “먹어 없애자”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엄마는 그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셨다.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차려서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면서- 엄마는 요리하실 때마다 이 식재료는 어디서 구했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했으며, 또 이번엔 어떤 소스/향신료를 썼는지 정말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할 때마다 뿌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지금도 그렇고-
어린 시절 어떤 쇼핑보다 (엄밀히 따지면 엄마를 쫄래쫄래 따라다닌 거지만-) 신촌 현대 백화점 식품코너, 마포현대 아파트 채소트럭, 공덕시장 생선가게, 염리동 시장 골목에서 과일/채소/생선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정말 재밌었고- (집에 김치냉장고 세 대, 냉장고 두 대가 있으면 말 다한 거 아닌가 흙). 그래서 그런지 딱히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먹는 얘기가 세상 즐겁고, 요리도 노동보다는 놀이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눈대중, 야매 미각에 의존하여 내 밥상을 차린 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스스로 먹을 밥을 차린다는 이 숭고한 리츄얼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은 유학시절인데, 처음 닭볶음탕을 만들어서 기쁜 마음에 가족에게 자랑했다. 타향살이가 설웁고, 세미나에서 얻어터지고 온 날이면 중국 마켓에서 비싼 한국식 재료를 사거나 웨이트로즈에서 50파운드 넘게 장을 보고 집에 갇혀서 3인분 이상의 음식을 연성하고 친구들을 불러 노나 먹곤 했다.
내가 내 것이라 부르는 레서피는 없지만 (휘발성 인스턴트 레서피라 하겠다-), 어떤 음식을 해도 내 입맛엔 맛있는 것 같아 안도하며 밥상을 차린다. 한국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이후 밥 해 먹는 재미를 잊고 살았다. 야근, 다이어트, 스트레스, 시간 부족의 핑계 혹은 나름 합당한 이유들로 요리와 멀어졌다. 다시 말해 내 우선순위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집 조명을 바꾸고, 큰 테이블을 활용하면서 뭔가 집에서 밥을 차려 먹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시작은 ‘바깥에서 대충 때우지 말고, 먹더라도 집에서 먹자’였는데, 퇴근하고 나서 뭐라도 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니더라도 채소를 씻는 동안, 분주히 마늘을 썰고 파스타 면을 삶는 동안은 아무런 잡생각 없이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어 기분도 참 좋다.
그래도 “대충 때우자”, “대충 해 먹자”, “먹어 없애자”라고 말하는 아빠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엄마만큼 섬세하지 않은 미각을 가진 거 고것도 이해가 된다. 30년 넘게 직장인으로 바깥 음식 먹으며 점심시간을 쫓기듯 보내신 울 아빠- 그래서인지 모든 식사를 10분 안에 마치시는 습관을 갖고 계신다. 직장인의 고질병 흐읅.
나 잘 먹고 잘 산다. 바쁘지만 다들 밥은 잘 챙겨 먹자.라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두서없이 쓰고 있다.
#밥값하러이만총총 #결국먹는게남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