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e Andrews의 <My Favorite Things>를 듣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 위아래로 요동치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내가 줏대 없다니. 감정이 뭐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그리고 바로 이런 욕구가 올라온다. 빨리 이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욕구.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토로하기 바빴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감정 배설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토로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다가 속병을 단단히 앓은 후에야, 감정을 묻어두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낯선 외국 땅에서 공부했던 시절, 매일 마주하는 아침이 힘든 과제로 다가올 때마다 <The Sound of Music> 영화에 나오는 <My Favorite Things>를 들었는데. 오늘 어쩌다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가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듯 마음이 슬프거나 우울할 때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힘든 기분이 날아갈 것이라는 내용. 멜로디를 타고 나오는 몽글한 단어들이 정말 단시간에 사람을 웃게 만든다. 음악의 힘이란 대단하고 생각하면서, 나를 순간 행복하게 만드는 일상의 요소들을 한 번 나열해본다.
1.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하늘
-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아서 하늘의 청명함에 눈이 시린 그런 계절의 하늘을 난 참 좋아하는 것 같다.
2.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비 구경하기
-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소리, 비 냄새, 비로 뒤덮인 세상 풍경은 떠올리기만 해도 근사하다.
3. 우연히 하늘을 쳐다봤는데 달과 별이 보이는 것
- 정말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하늘을 보는데 하늘에서 달과 별이 지켜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느낌이다.
4. 파스타 해 먹기
- 재료를 고르고, 파스타를 삶기 위해 타이머를 맞추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어 만드는 파스타. 왜 좋아하냐면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요리니까. 게다가 정답도 없지.
5. 요가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음악
- 집에서 요가원까지 1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으며, 심사숙고해서 고르는 음악들. 하루의 생각 정리를 도와주는 음악이라 참 좋다. 어쩔 땐 힙합, 어쩔 땐 락, 어쩔 땐 서정적인 클래식.
6. 출근길 커피 사기 & 커피 내리기
- 하루의 시작을 여는 시간이라 보통은 설레고, 즐겁다.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 듣는 느낌. 그리고 노찾사의 <사계> 느낌.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7. 어스름
- 해가 지면서 온 지구에 커튼을 치는 시간. 날이 좋으면 사람들이 감탄하며 사진 찍는 모습이 왜 이리 귀여운지 몰라. 정말 거대한 자연 앞에 한 없이 작은 인간인 게 너무 짠하고, 뭉클한 순간.
8. 나무, 풀 냄새
- 깊게 쉬지 않아도 느껴지는 자연의 냄새. 특히 나는 나무 냄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비 온 뒤 나무가 뿜어내는 오묘한 냄새가 참 좋다.
9. 빛이 모이는 중정, 정원
- 날은 쌀쌀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건물의 중정과 정원을 참 좋아한다. 세상이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우리가 위안 삼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그래도 행복한 일인 것 같다.
10. 친구들, 음식, 와인이 있는 따뜻한 저녁
- 빔 스크린으로 영화를 틀어놓고, 잔잔한 재즈 혹은 캐럴을 틀어놓는 송년회 분위기의 저녁. 별 말하지 않아도 웃고, 별 거 없는데도 뭐든지 맛있는 저녁의 분위기. 친구들의 상기된 얼굴과 즐거운 대화.
쓰기만 해도 벌써 행복하다. 정말 신기하다. 이 열 가지 순간을 매일 만나지는 못해도 -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힘든 감정들은 바로 잊어버리게 된다. 심지어는 삶을 잘 살고 싶은 의지가 마구 생긴다. 그래, 이런 순간을 위해 내가 태어난 거구나. 삶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구나. 삶은 치열하지만 그래도 우린 살아야지. 잠깐이라도 웃어보자고, 힘을 내자고 - 내 소중한 일상의 순간이 내게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