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영국 유학생활의 장점
*이 글은 2018년에 쓴 글이며, 2011년~2016년 유학생활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영국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한국 대학교 시스템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동생이 새벽같이 일어나 PC방에 가서 수강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시스템이 많이 열악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강의실 안에서 배우는 것이 참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대학을 가는 이유 중 8할 이상을 질 좋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 것이라 생각해온 나에게, 영국으로 대학을 간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졸업을 위해 총 360 크레딧 (학점)을 땄다. 보통 한 모듈 당 20 크레딧이 기본이었고, 1학년 때는 6개의 모듈을, 2학년 때는 6개의 모듈을, 3학년 때는 3개의 모듈과 논문 (40 크레딧), 소논문 (20 크레딧) 모듈을 이수했다. 교양 수업이 있는 한국 대학과는 다르게 모든 모듈이 촘촘하게 전공과목으로 채워져 있다.
하나의 모듈은 주 1회, 50분의 렉쳐와 주 1회 50분의 세미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렉쳐는 학교의 헤드라이너 급 교수님이 전공 필수 과목을 듣는 200~300명의 학생 앞에서 가르치는 시간이고, 50분을 넘기지 않는다. 세미나는 헤드라이너 교수님 혹은 튜터 (보통 PhD Student 혹은 닥터)가 이끄는 10-15명 규모의 소규모 그룹이다. 공대처럼 실험도 없고, 특별한 일이 없던 정치학과 친구들은 보통 일주일에 렉쳐 3회, 세미나 3회를 갔다. 나의 경우, 세미나 시간표를 잘 배치해서 주 2회 수업을 간 적이 있다.
렉쳐의 경우 한국의 강의와 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세미나의 경우 렉쳐에서 배운 주제와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필수 Reading list (주로 학계 논문, 책, 아티클 포함) 를 모두 읽었다고 상정하고, 튜터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의하도록 세미나를 이끈다. 튜터는 50분의 시간 동안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더 '잘' 말할 수 있게 그룹을 묶는다든가 학생들의 의견을 화이트보드에 적어서 정리하고 요약할 뿐이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야 하는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너무 스트레스받아 첫 세미나가 끝나고 공원에서 울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렉쳐-세미나 시간이 어느 정도 적응되니 혼자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입 하나도 뻥끗하지 못했던 수업도 있었지만, 아티클을 읽고 혼자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내는 과정이 좋았다.
교수님, 튜터도 대부분 친절했다.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준비하는 주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코멘트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읽어보면 좋을 리딩 리스트를 추천하며 내가 잘 연구할 수 있게 독려할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찾고 정리하는 과정이었기에 즐거웠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주도적으로 나만의 답을 찾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과 시스템이 받쳐 주지 않는 대학교에서 석/박사가 아닌 학생들이 그런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겪어보지 않아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소신 있게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