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낯섦은 곧 익숙함이 되겠지.”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낯섦은 곧 익숙함이 되겠지.
유학길에 오르고 며칠 지나 아빠로부터 받은 메시지였다. 딸의 새로운 출발을 걱정하면서도 내심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을 텍스트에 담아 딸에게 꾹꾹 전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서울시 마포구”를 벗어난 적 없는 딸이 한국과의 시차가 9시간이나 나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린다고 했으니 부모로서는 매우 걱정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땐 늘 아빠가 내게 해 준 말이 떠오른다. 가끔 나는 내가 겪는 낯선 환경이 영원할 것 같아 무섭고, 또 가끔은 권태로움이 영원히 잠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우려가 뇌리를 스칠 땐, 낯섦에 먼저 적응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익숙함에 권태로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아빠의 말이 내게 힘을 준다. 왜냐면 당연하게도 인생은 익숙함과 낯섦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익숙함보다 낯섦이 더 위험 신호로 느껴진다. 그건 생존과 적응에 최적화된 내 뇌에 정말 갑자기 새로운 기회가 문을 두드리지만, 내 뇌는 이를 위험으로 인지하고 갖은 리스크를 열거하며 보란 듯이 “status quo(현상 유지)”모드를 켜버리기 때문 아닐까. 뇌의 자연스러운 효율 관리를 생각하면, 낯섦에 의도적으로 노출하지 않음 어쩔 수 없이 늘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던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슬프게도 낯섦을 매 번 좇기엔 내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있고 리스크도 존재한다. 그러나 리스크를 생각하며 늘 다음을 기약하기만 하면 ‘위험’으로 보이는 성장의 기회 또한 놓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이런 상황을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익숙함에 머무를 권리도, 새로움을 좇을 권리도 남이 아닌 내게 있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말이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주도적으로 나를 낯선 환경에 내던지며,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다. 익숙함과 낯섦을 대하는 태도도 가치관에 따라 다르고 또 좋고 나쁨이 없겠지만- 나는 이 둘 사이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새로워지고, 또 노련해지고 싶다. 그러는 동안 새로움을 바라보는 안목도 생기고, 슬기롭게 권태로움을 이겨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