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해봐서 정말 다행이야

by 창업하는 선생님

난 오만한 인간이었다




고3 벼슬 시기를 지나 큰 어려움 없이 여러 대학에 합격해 골라서 대학 진학을 했다. 임용고시도 중간에 실수가 있었지만 내 기준으로는 만족스러운 과정과 결과를 통해 합격을 해냈다.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쪼달렸던 대학생활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돈을 벌었다. 5000원 점심도 아껴먹었던 과거와 달리 몇 만 원짜리 맛집을 찾아다니고 후식으로 1~2만 원을 쓰고 다녔다. 옷도 싸구려 보세에서 나름 사람들이 말하면 알고 있는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녔다. 누군가에게 코웃음 칠 수 있는 돈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풍족한 돈이었기에 그 즐거움과 격세지감은 나한테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사고 싶은 건 마음껏 살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놀고 싶으면 돈에 신경 안 쓰고 놀러 다닐 수 있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할 수 있었다. 수평적인 교직 문화는 교장, 교감 선생님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내 어머니 뻘의 선생님도 날 어여쁘게 여겨줬다. 아이들은 나만을 바라보고 내 말에 착착 움직였다. 모든 환경이 날 추켜세워줬고 처음 만나는 이들도 어린 나이에 교사라고 하면 놀람의 표정을 보냈다.


이렇다 보니 세상을 내 맘대로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세상이 우스웠다. 거만함이 나를 잠식해왔다. 고집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존심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사람이 점점 맛탱이가 가고 있었다.





차가운 현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입대 일주일 전까지 바쁘게 수업도 하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 - 계급과 군번이라는 이름 아래 바깥에서 쌓아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평등해지는 이곳에서 나는 그저 예쁨 받고 존경받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기보다는 머리 민 군인,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 계층에 불과했다. 26살이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도 괜찮은 직업도 학벌도 의미가 없었다. 항상 귀하게 대우받았던 사회와 비교하면 억압적인 조직 분위기에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는 자괴감과 울분이 솟아올랐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항상 존중받았던 한 인간은 무시와 사람보다는 도구 취급을 받으며 벌거벗은 채로 차가운 현실로 내던져졌다.


항상 따뜻한 말을 해주던 사람들 대신 주변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명령을 던지는 인간들만이 존재했다. 생활관에서 주머니에 들어간 모래를 빼다가 입수 보행을 했다며 군인 기본자세가 안되었다며 억울하게 조교에게 혼이 나야 했다. 조교는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판단과 생각만으로 날 판단했다. 울분이 솟아올랐다. 훈련 후 물건을 재빨리 옮기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교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왜 놀고 있냐며 악을 질렀다 억울함을 느껴야 하기도 했다.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저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덩달아 모욕적인 말을 처먹었어야 했다. 잘못한 게 없는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따스한 어투로 말을 해주는 조교를 만나고 1대 1 면담에서 공감의 눈빛을 보내주는 교관을 보며 그 인간적 존중에 울컥했다. 몇 주 만에 부모님과 첫 전화통화를 하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편지를 받았다. 가족과 우정의 중요함을 다시 느꼈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주변인의 존중과 안온함, 이해를 당연하게 여겨왔었다. 그러다 군생활을 통해 부재 속에서 존재의 중요함을 온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어렸을 때 너무나도 당연시하게 받아왔던 것들(가족, 친구, 인간들의 존중 등)의 존재를 부재를 통해 여실히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누려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받았던 것은 어른들의 관대함과 누군가의 이해덕에 생겨난 것임을 뼛속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던 한 인간은 퉁명스럽게 부모님께 툭툭 내뱉던 말투를 고치고 사근사근 따뜻하게 부모님께 말을 건네게 되었다. 다른 사람 눈치가 보여 선물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걱정과 감사함, 진심을 담아 선물을 챙겨갔다. 친구들의 실정에 대해 별로 관심도 가지지 않고 연락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 이젠 먼저 연락을 하고 깊은 관심을 보내며 희로애락에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갑의 위치에 있었기에 을의 위치에 속한 자가 겪는 억울함을 못 느껴봤던 교사는 아이들을 대할 때 냉엄한 법관처럼 아이들을 대했었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그들만의 상황과 역사, 본능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질서를 밀어붙이고 윽박질렀다.



그러다가 나의 규칙과 판단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내가 옳다는 아집을 가졌던 오만한 교사는 반대로 차가운 심장의 법관 앞에 피해자가 되었다. 선생의 입장에서 반십년 만에 을의 위치인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오게 되었었다. 그런 과정을 겪어보자 칼날 같은 심판자 같던 선생님에서 아이들에게도 따뜻함과 공감을 제공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을의 입장에 서보고 난 이후에서야 을에게 후임들에게 아이들에게 생긋 웃어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아기 고양이를 품어주듯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내뱉을 수 있는 현재의 나가 될 수 있었다.



군대에 내던져지지 않았더라면 이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인간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군대가 아니라면 선생이 언제 다시 학생의 위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을까? 군생활은 나에게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인격적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기에 현재 군대에서
먹고 싶은걸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걸 하지도 못하고 돈도 못벌고 있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군생활을 해봐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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