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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May 26. 2019

100일 글쓰기 67일차

세줄 일기

새삼 부모님이 참 대단하시구나, 날 너무 잘 아시는구나, 난 진짜 별것도 아니구나 를 느낄때가 있다.

오늘은 드디어 새 집에 암막커튼을 설치한 날 이었다. 사실 배송은 진작에 와 있었는데, 커튼 레일을 설치하고, 커튼에 커튼 핀을 끼우고 하는 일들이 조금은 엄두가 안나서 미뤄두고 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오늘 부모님 댁에 간 김에, 슬쩍 눈치를 봐서 도와달라고 말씀드리고, 먼 길이지만 우리집까지 두 분을 모셔왔다. 원래 뭘 해달래도 선뜻 해주시는 법은 없는 분들이신데 왠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얼씨구나 해선 얼른 모셔왔다.

집에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쉬고계시라고 말씀드리고, 관리실에 가서, 전동 드라이버와 사다리를 빌려왔다. 근데 전동 드라이버 생긴걸 보니 갑자기 너무 써보고 싶었다. 무게도 묵직하고, 누를때마다 부르르 떨리는게 되게 쓰고싶게 생겼다. 오자마자 바로 사다리를 펴고, 브라켓을 하나씩 박아봤다. 엄청 재밌었다. 가운데 레버를 옆으로 왔다갔다 하면 역방향으로도 회전해서 나사를 뽑을 수도 있다. 브라켓도 네개 뿐이라 금방 박았고, 다 박고나니 레일 끼우는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한쪽을 끼우고 반대쪽을 꾹 누르기만 하면 탕탕 잘 박혀졌다. 핀끼운 커튼 다는건 뭐 일도 아니다. 슥슥 끼우면 끝난다. 그러고 나니 진짜 암막커튼이 뿅 달려있었다. 일 시작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바로 끝났다. 이걸 봐주신다고 부모님은 차로 40분 가량을 달려야 했는데, 결국 작업자체를 보니 나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이었고, 결과적으론 나 혼자 다 했다.

근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나 혼자 있었으면 그렇게 한번에 후루룩 할 수 있었을까 싶다. 혹은 일 하는 동안 부모님이 툭툭 던지는 리액션에 말려들어서 해달라 소리 한번을 못하고 혼자 끝냈지 싶었다.

커튼작업을 하는 10분동안 부모님은 걱정 한마디 툭, 칭찬 한마디 툭 엄청나게 리액션을 해주셨다. '그렇게 올라가면 미끄러지지 않을까?', '거기보단 더 옆이 낫지 않을까', '잘하네, 아빤 그런 기구 무서워서 못쓰는데', '그렇게 한방에 박아지는거냐 신기하게 잘하네' 이런말을 내내 하셨다. 그렇게 하면 안될것같은데 라는 걱정으로 슬쩍 오기를 건드리기도 하시고, 잘한다는 칭찬으로 북돋워주시기도 한거다,,, 내가 혼자 왔다갔다 하는동안 한번도 '드라이버 줘봐', 혹은 '내려와봐 해줄게' 라는 말씀은 단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다시 댁으로 되돌아가시고, 한참 혼자 뿌듯해하다가, 그렇게 이게 내가 혼자한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면서도, 오늘도 내가 부모님 협공에 말려들어서 혼자 다 했다는걸 깨달았다. 뭘시키던 항상 이런식이셨는데,,, 오늘도 또 이렇게 당했구나 싶었고(부부사기단...), 또한 이런 방식이 날 지금 만큼이나마 크게 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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