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출발점
어릴 땐 막연한 생각으로 서른 즈음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을 했었다. 직장을 다니며 일도 열심히 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는 가을에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고,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직장 선배들과 맞지 않아서 결혼을 백일 정도 앞두고도 사표를 냈다. 다들 나에게 결혼까지는 다니고 회사에서 챙겨주는 축하금과 2주간의 휴가(신혼여행)도 다 챙기고 퇴사하라고 만류했지만, 돈과 휴가도 내 우울증 증상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하염없이 드는 생각은 지쳐있던 내 마음과 몸에게 휴식을 주는 요량으로 어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결혼이 다가오기 전에 나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기에 재직기간 동안 모여있었던 퇴직금을 털어 서둘러 프랑스로 가는 왕복 비행기표를 끊었다. 친구에게까지 이런 속사정을 다 이야기할 순 없었지만 일단 친구네에서 잠시 요양을 하기로 했다. 예비신랑이었던 남자 친구는 그때 혼자 여행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었다.
처음이었다. 나 혼자 티켓을 끊고, 홀로 공항으로 가서 국제 편 비행기에 올랐던 일은 내 인생에서도 처음 도전해 보는 일이었다. 프랑스로 가는 12시간 동안 삼시세끼 기내식을 먹고, 졸리면 눈을 감고 자고, 가끔 비행기 창문을 열어 구름을 내려다봤으며, 앞좌석 뒤에 달려있던 모니터를 보며 최신 영화를 보기도 했다. 도착 예정 안내방송이 나오고 드디어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비행기를 내린 순간부터 외국인들이 가득했으며 그들이 내는 언어도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면 난 국제미아가 되는 것인가.. 친구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별별 걱정들만 가득 쌓고 있었다. 친구는 약속시간보다 늦었지만 다행히 나와 만나게 되었고, 공항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을 타고 친구네 집으로 이동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풍경도 낯설었다. 그렇지만 한국이 아니란 사실이 좋았고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라서 더 좋았다.
친구네 집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몽쥬 약국 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이며 각 창문마다 예쁜 꽃들을 심어놓은 모습이 유럽이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설명해주길 프랑스의 건물들은 거의 백 년이 넘었다고 한다. 오래되었지만 허름한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으며 그보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집이었다. 한 사람 겨우 통과할 만한 층 계단과 2~3명의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만한 엘리베이터는 꽤나 인상적이었고,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집이어서 신기했다. 사다리꼴 구조의 친구네 집은 화장실 하나 방 하나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원룸형이었다. 친구도 마침 방학이라서 함께 갈 만한 여행지 코스를 짜 두었지만 혹시나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때도 그저 기력이 없고 다 내려놓은 상태였기에 여행에 대한 목적은 따로 없었고, 어디든지 상관없었다. 친구가 코스를 짜 놓은 그대로 가보기로 했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여기는 운영시간이 마감되어서 그냥 입구에서만 바라보고 돌아왔다. 담에 간다면 내부도 꼭 구경해보고 싶은 곳!), 라파예트 백화점,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 등 유명한 명소란 명소는 다 가 본 듯했다. 둘 다 학생 신분에다 백수 신분인 탓에 넉넉지 못한 형편이어서 미식의 나라인 만큼 현지식(프랑스식) 음식은 잘 먹어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빵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서 달을 닮은 크로와상과 초코 들어간 뺑 오 쇼콜라를 사 먹어 본 외지인이었다. 주로 한인마켓 가서 한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진짜 외식이 하고플땐 가성비 좋은 일식 가게에 가서 야끼소바 정도는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서 풍요롭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를 가지 않는 시간엔 주로 집에서 하늘을 보며 누워있었고, 친구랑 같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20여 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쯤엔 친구는 첫날에 함께 탔던 공항으로 연결된 지하철 환승구간에서 일찍 굿바이 인사를 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프랑스 풍경을 다시 눈으로 담아보면서 처음 발을 디뎠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혼자서도 여행을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작은 용기도 덤으로 얻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친구와 찍은 여행 사진들을 살펴보며 다시 추억을 되감아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내린 후 한국은 그대로였다. 세상은 내가 없이도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으며 결혼을 불과 한 달 앞둔 예비신부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로도 방에서 앉아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디자이너로써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결혼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점점 더 증폭될 뿐이었다.
결혼도 사실 내 인생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 중 하나였다.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증언하는 이웃들을 못 봤던 탓도 있었지만 혼자 생활해 본 터라 스스로 챙기고 먹고 하는 게 더 편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난 비혼이 더 좋았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서 두 번째 데이트하던 날 남자 친구가 본인은 나와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엄청 놀랐고 당황했었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생활이었고 남자 친구의 진지한 태도에 나도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와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고, 1년이 지난 후에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된 후 결혼이라는 걸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국은 나이 들면서까지 곁에서 늘 함께하는 친구 한 명을 평생 반려자로 둘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지금 현재까지도 평생 친구사이는 진행 중이다!)
내겐 서른도 방황의 시간이었던 듯하다. 아무 곳도 속해있지 않은 자유의 몸이었으나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가족이라는 소속이 생겼고, 생애 첫 홀로 해외여행도 다녀와 보았으며, 이제껏 생각해오고 일해왔던 직업을 한순간에 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던 시기였다. 나의 어릴 적 상상과는 다른 서른을 맞이했지만 그 시간 동안 배운 점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나에게 있어 서른은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두 번째 출발점이 되었고,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반려자로 역할이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