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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

영화 '더 파더'를 보고

by 스텔라
“세상에서 제일 공포스러운 건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는 거야.”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책 속 모든 내용을 기억하던 영특한 아이가 말했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자기 죽음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아닌 기억의 죽음이었다. 더는 자신의 지성에 기댈 수 없는 것, 사고체계가 불완전해지고 연소하다 마는 것.


‘나를 잃는 것’


순간 그 아이가 말하는 공포가 내게 전염되었다. 그날 이후 가장 두려운 것 목록엔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자신’이 올라와 있었다.


이제까지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의 시점은 관찰자였다. 환자의 보호자나 혹은 객관적 3인칭 관찰자의 시점, 언제나 당사자가 아닌 주변부 입장의 이야기였다. 영화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 병세가 악화하는 당사자 ‘앤소니’ 시점으로 그려진다. 뒤섞이는 시간의 흐름, 기억의 흐름, 내가 틀리고도 틀린 줄 모른다는 불안, 모든 게 하나씩 뒤죽박죽되어버리는 혼란과 공포, 그건 눈을 감고 낭떠러지가 앞에 놓인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그 아이 말이 맞았다. 어떤 공포, 스릴러 영화보다도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두렵고 무서운 데다가 처연하고 슬퍼졌다. 처음, 앤소니가 맞이한 혼란에 준비 없이 두들겨 맞고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찾아 헤메이던, 어리석은 나는 어느새 무력하며 어느 것도 알 수 없으며 진실이 중요치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다 놓아버리고 그저 보았다. 아마 내가 진짜 앤소니였다면 딸 ‘앤’의 고통과 아픔을 일시적 느끼고 다 잊어버리고 말았겠지.


그런데 그 아이가 누구였지? 내게 그 말을 해 준 아이. 그 아이가 실제 있었던가? 그게 내 기억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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