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턴 대학원 포트폴리오 준비하기

(1) 성공적인 포폴을 위한 네 가지

by Stella

영국에서 돌아온 지 이미 6년이나 지났다! 돌아온 직후부터 출판사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다시 준비하느라, 또 작업을 하느라 영국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다.


벌써 시간이...


돌이켜보면 처음 유학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지 9년이 지나버렸다. 사실 일하면서 계속 영국에 대한 포스팅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귀국 직후에는 내가 과연 이런 포스팅을 해도 되는 자격이 있는 걸까- 싶은 생각에 계속 미루고 있었다. 무언가 뚜렷한 성과도 없이 유학담만 올리면, “그래서 돌아와서 해놓은 게 뭐가 있나요?” 같은 질문을 받을까 봐서다. 사실 모든 유학생들이 떠올리는 두려움 아닐까?


이젠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분야에 나름 중견작가가 되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지난날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는 게 늘 슬프지만, 그만큼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9년 전 포트폴리오를 다시 보는 건 내 초딩때 일기를 보는 것만큼 부끄럽다. 아, 지금 돌아가면 좀 더 열심히, 더 잘 해낼 수 있었는데!


20251208_235308.jpg

그래도 이야기를 하려는 건, 어디선가 킹스턴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쇼츠나 유튜브 영상은 많지만, 생각보다 옛날만큼 유용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글을 찾기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해서 나는 어떻게 킹스턴 대학원 포폴을 준비했는지 명료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당시 내가 지원한 학과는 킹스턴 대학원 Communication design: Illustration MA 코스였다.


유학원과 함께

나의 경우엔 집에서 혼자 작업하다가, 도저히 진행이 안 돼서 막바지엔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돈도 아낄 요량으로 집에서 기존의 작업물을 얼기설기 엮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렇게 급하게 마감 기간에 맞춰서 11월쯤 미국 대학원에 보냈지만, 당연히 결과가 좋지 않았다. 포트폴리오에 예전 회사작업과 프리랜서 작업, 학교 과제가 마구 섞여있는 만큼 혼잡했고, 돈을 아낀다고 영어 검수까지 제대로 안 했으니… 그렇게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3-4개월 정도 유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영국 유학도 추천받았다!


미국과 달리 영국의 경우 Conditional offer라고 해서, 포트폴리오로 조건부 입학 허가를 받으면 1년이나 2년 후에 입학이 가능하다. 난 해외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확실하게 하고 그다음 킹스턴 대학원 입학을 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유학준비를 할 수 있었다.

1-04.jpg

대학원 유학을 혼자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돈을 아낄 수 있다면 혼자 준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혹여 떨어질 경우 1년 동안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준비 기간 동안 게을러지면 포폴은커녕 유학 계획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유학원의 도움을 단기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찾아보면 영국 전문 유학원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학원이 킹스턴 대학교와 연계가 되어있어서 아예 킹스턴 미술학장님과의 인터뷰를 유학원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때문에 좀 더 안심하면서 포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유학원에 따라 해당 해외 대학원과 연계가 잘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부분도 큰 장점이다.




그럼 난 포폴을 어떻게 구성했을까?

내 포폴의 목차, 그리고 각각 포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다음과 같다. 포폴은 A4나 A3 사이즈의 PDF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제출했으며, 페이지는 90페이지 내외다.


(1) Picture Book Project (나만의 그림책 더미북) / 50%

(2) Life drawing (자유로운 프리 드로잉) / 35-40%

(3) Other works (회사 작업 & 외주 그림 등) / 10%

(4) C.V (이력서) / 1장



(1) 나만의 그림책 더미북 만들기


영국 대학원 포트폴리오에서 중요한 요소는 뭘까? 나는 크게 두 가지 테마를 놓고 진행했다. 하나는 나의 “그림책 더미북”, 나머지 하나는 나의 기본기를 잘 보여주는 “프리 드로잉”.


사실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하건 그건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쪽이 일러스트레이션이라면, 특히 출판에 특화된 학과라면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더미로 만들어서 미리 보여주는 게 제일 좋다. 교수님이 출판사 편집자나 아트 디렉터라고 생각하고 만들면 더 좋다.


내가 생각한 나만의 그림책 더미북을 상상해 보자. 스토리에 어울리는 재밌는 캐릭터는 뭐가 있을까? 여러 도구로 스케치해 보고, 연구해 보고, 자료도 찾아보자. 그리고 그림책의 대사 스크립트를 쓰고, 내친김에 스토리 보드도 그려보자! 스토리 보드 작업을 하면서 가끔 대사가 바뀌거나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는 것도 좋다. 포폴을 보는 교수님들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보는 걸 매우 좋아한다.

1-03.jpg
1-06_1.jpg

그다음 스토리보드에서 가장 key scene 이 되는, 중요한 장면이나 내가 그리고 싶은 장면을 최소 4-5 페이지 정도 짱짱하게 완성해 보자. 실제로 그림책 출판사들은 작가들로부터 러프한 스토리 보드와 함께, 거의 완성이 된 4-5페이지의 그림을 같이 받아서 검토한다 (해외도 마찬가지). 이렇게 하면 교수님들은 학생의 스토리보드 제작 능력과 함께, 작업물을 완성하는 능력도 같이 보게 된다. 또 실제 출판사에 문을 두드리기 전에 좋은 예행연습이 되기 때문에 더 좋다. 원한다면 그대로 그림책 출판사에 투고해도 되고!

1-05.jpg 내가 그린 샘플 완성작


덧붙여, 이 책이 실제 출판이 되면 어떤 느낌일지 실제 책과 합성해서 뒤에 덧붙여주자.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실제로 출판사 투고용 포폴을 만드는 그림 작가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1-16.jpg


시간이 없으면 1개의 더미북만 해도 좋지만, 2-3개의 더미북 그림책을 더 만들면 더 좋다.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노력을 많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다양한 글감을 만들어 놓으면, 설령 합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더미북으로 실제 출판사에 여러 번 투고할 수 있다. 유학으로의 목적뿐만 아니라, 내가 꿈꾸는 분야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런 실용적인 포폴을 만들자.


(2) 다양한 Life Drawing 매일 그리기

더미북과 더불어 내가 제출한 건 다양한 “라이프 드로잉”이었다. 드로잉 북은 크지 않아도 좋다. 아니, 크지 않을수록 더 좋다! 그림이 너무 크면 부담스러워서 아예 시작도 못한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작은 드로잉북에 매일매일 그려본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그리고 싶은 테마로, 쓰고 싶은 재료로 마음껏 그려보자.


재료도 다양하게 써보자. 처음엔 볼펜과 연필로 세밀화를 그릴 수도 있다. 혹은 콜라주 기법을 써서 종이에 색종이나 천, 나무조각, 신문지, 선물이나 과자 포장지 등 다양한 걸 붙여봐도 좋다. 아예 입체적인 낙서를 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을 찍어서 콜라주를 하거나, 사진을 오려서 입체 디오라마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창의적인 드로잉을 연구해 보자.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해 보자.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이면서 기발한 드로잉을 만들까? 어제보다 더 다른, 오늘보다 더 기대되는 색다른 그림을 그려보자.


이런 유학포폴을 준비하지 않는 한, 사실 이렇게 자유롭게, 그리고 많이 많이 그림을 그릴 일이 거의 없다. 크로키나 자유 드로잉, 스케치북 한 권 채우기 등은 미술 대학 초년생 때나 누려보는 특권이다. 포폴은 3-4개월 안에 바짝 시간을 들여 끝내는 게 좋은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누리면서 자유롭게 만들어보자!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림작가가 되면 대부분 출판사가 정해준 포맷 안에서 작업하는 만큼, 생각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

1-20.jpg 내가 그린 프리 드로잉 중 '레빗' 시리즈

한 가지 주제로만 해도 좋지만, 가능한 2-3가지 테마를 정해서 다양하게 그려보는 걸 추천한다. 하나는 자유로운 인물 크로키, 다른 하나는 세밀한 동물 세밀화나 다양한 재료의 풍경화 등등… 한 명의 학생에게서 매우 다양한 관점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좋다. 단, 빨리 그리고 자주 그려야 하는 만큼 A5 내외의 작은 드로잉북에 그리자.


(3) 외주 그림이나 회사 작업물은 마지막에


나는 다행히 대학 졸업 후에도 그림일을 간간히 해왔기 때문에 포폴에 곁들일만한 작업들이 꽤 있었다. 짧게 다닌 회사 작업물, 소설 표지 작업, 심지어 재능기부로 짧게 그린 그림 등등… 하지만 여기에 넣은 건 그 모든 작업의 10% 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삼십 줄을 앞두고 인생 새막을 여는 만큼 아예 나만의 그림으로 포폴을 꽉꽉 채우고 싶었다.


그림과는 다른 제품디자인이나 영상, 웹디자인에 종사한 사람이라면 회사 작업물을 포폴에 넣어도 될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넣어도 된다! 단, 회사의 작업물이 포폴의 대부분을 차지해선 정말 곤란하다. 그림으로 경력을 이어온 나 조차도 외주나 회사 작업물은 가장 뒤에 조금 실었다. 그것도 10% 내외로.


돈을 받고 일하는 작업들은 규격화되어 있다. 교수들은 개인의 고유한 창의성을 보고 싶은 만큼, 남이 주문한 그림이 아닌 “나 자신”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창의적인 작품들을 원한다. 아쉽더라도 자기 작품을 따로 만들어서 포폴에 넣어야 하는 이유다.


(4) CV는 간략하게

PDF의 마지막 페이지는 그간의 이력을 알려주는 C.V, 즉 자기소개서로 끝내는 게 좋다. 여기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와 “이메일”이다. 열심히 포폴을 만들어서 교수님의 마음에 쏙 들었는데, 연락할 방법도 수단도 없다면 낭패 아닌가.


밑으로 자신의 출신 대학교(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는 안 써도 됨), 지금까지 일했던 회사 목록과 재직 기간을 링크드인 Linkedin 방식으로 시간대별로 나열하면 된다. 그다음 재학, 혹은 재직 중 뚜렷한 수상경력이 있다면 꼭 쓰는 게 좋다.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 수상내역도, 해당 장학금 이름과 받은 금액(파운드 스털링으로 변환)까지 영어로 작성해서 쓰면 더 좋다!

9-1.jpg 개략적인 CV 탬플릿. 구글링 해보면 많이 나온다.

이 C.V는 최대 2장을 넘기지 않는 게 좋은데, 포폴은 학생의 그림 역량을 보는 거지 화려한 재직 경력을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원 교수님들은 학생이 얼마나 좋은 대학교를 다녔는지, 유명한 회사를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학생의 잠재력과 기본기,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의 노력’을 가장 열심히 본다. 워낙 여러 나라의 다양한 대학교 출신 학생들이 입학원서를 쓰는 만큼, 대학교 타이틀은 영국에서 전혀 변별력이 없다. 이점, 유의하자.




이렇게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 구성과 만드는 방법을 써봤다! 이건 나와 유학원이 골몰해서 만든 내 방식이니, 정해진 답은 아니니까 똑같이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킹스턴 대학원의 Communication design: illustration 학과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는 큰 항목에 속해있다. 꼭 그림책이 아니라도 일러스트레이션으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도 좋다.

1-21.jpg 역시 낙서북 그림들...

만약 내 그림으로 구성된 에세이북을 구상하고 있다면, 잘 완성된 작품 4-5개와 함께 글감을 짜서 정말 출판된 것처럼 보이는 목업 작품을 만들면 된다. 애니메이션이 좋으면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와 완성된 짧은 10-15초짜리 짱짱한 결과물을 같이 넣어도 무방하다. 그림책이 아니라, 스티커 북이나 팝업북 같은 액티비티 책으로 작품을 구상해도 된다! 나의 경우엔 애초에 그림책이 좋아서 대학원에 가는 만큼, 그림책을 테마 삼아 포폴을 만든 것뿐이다.


유학 포트폴리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큼 수많은 정답이 있다. 하나의 답에 구애받지 말고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림 그리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