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의 고정비용
혼자 그림을 그리고 나서 가장 신경 쓰게 된 건 매월 빠져나가는 작업비이다.
회사에서는 컴퓨터나 태블릿, 디지털 프로그램 등을 대부분 지원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 컴퓨터 구입에다 수리비, 매달 나가는 디지털 구독료가 정말 만만치가 않다. 한때 유튜브 프리미엄이 7000~8000원이던 시절, 포토샵이 만원도 안되던 때엔 부담이 거의 안 됐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서 다달이 보던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는 애초에 구독을 취소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득, 난 월마다 얼마를 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물론 여기에 유화나 수작업 그림처럼 좋은 재료를 사야 될 경우 더 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
1. 공유 클라우드
난 구글 드라이브 기본 용량으로 연마다 결제해서 쓴다. 구글에서는 주로 문서나 프레젠테이션 같은 문서작업만 하기 때문에 큰 용량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 드라이브는 범용성이 있어서 자료를 공유하며 쓰기가 편하고 오류가 잘 안 난다. 하지만 300Mb 이상의 큰 포토샵 이미지를 온라인에 올리면 미리 보기가 제대로 안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큰 파일을 실시간으로 백업해서 공유할 일이 많은 영상작업자, 디자이너들에게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월마다 3700원, 연 결제는 37000원이다(연 구독 시 2개월치가 공짜).
그림 작가로서 단연 주로 쓰는 건 드롭박스(Dropbox)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드롭박스를 컴퓨터와 동기화를 해서 쓴다. 하지만 이래저래 중복 업로드가 많고 관리가 번거로워서, 난 그냥 작업 끝내고 나서 파일을 그때그때 바로 업로드한다. 드롭박스는 초창기 클라우드 회사 중 하나인 데다, 다른 사업을 병행하지 않고 클라우드에만 집중하는 회사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보다 유저 친화적, 특히 영상 편집이나 디자인 업계에 특화되어 있고 업로드 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좋다. 600~700메가가 훌쩍 넘는 PSD 파일도 거뜬히 미리 보기가 된다! 2T 용량을 주는 Plus 요금제는 연 $ 119.99이다(역시 연 구독 시 2개월치 무료).
2. 디지털 프로그램
몇 년간 내가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쓴 툴은 역시 프로크리에이트 Procreate이다. 아이패드를 써야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19000원만 내면 내장 기능들에다가 좋은 브러시들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좋다. 솔직히 모든 디지털 툴들은 프로크리에이트를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터치기능으로 포토샵의 거의 모든 기능을 구현하면서 유저 친화적으로 편리하기까지 하다니... 이런 사기템이 월 구독료도 아니고, 한 번의 구매로 평생 쓸 수 있다는 게 그저 고맙다.
더불어 어도비 포토샵도 10년이 넘게 구독하고 있다. 나날이 오르는 구독료 때문에 클튜 같은 포토샵 대용품으로 많이 갈아타는 작가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포토샵'이라는 UI에 너무 익숙해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쉽게 전환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아쉽게나마 계속 쓰고 있다. Portfolio라는 웹사이트 툴도 제법 유용하고, 특히 사진편집툴인 Lightroom의 Merge 기능이 아주 좋다! 큰 인화 사진이나 그림 특성상 쪼개서 스캔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이런 조각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합쳐주는 이 Merge 기능 덕분에 원화 작업속도를 훨씬 높일 수 있었다. 이 기능에 대해선 언젠가 따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3. 컴퓨터 & 프린터 토너비용
올해 더운 여름, 작업실에서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아예 집에서 작업할 PC를 따로 샀다! 덕분에 평소에도 간단한 업무는 집에서 끝낼 수 있어서 예전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게임용이나 영상 편집용이 아닌 일반 디자인용 PC는 90~150만 원 내외로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프린터를 컬러 레이저를 쓰는데, 정품 컬러토너가 너무 비싸서 1~2만 원 내외의 재생토너로 저렴하게 구입하고 있다. 토너를 다 쓰고 빈 통을 재생토너 판매처에 보내면 소정의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나름 환경도 보호하고 돈도 아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아니면 아예 무한 잉크젯 프린터를 쓰는 것도 좋다.
4. 수작업 비용
최근에 수작업의 비중을 더 높여보자는 생각으로 여름 내내 손그림을 많이 그렸다. 최근 Ai 이미지가 유행하면서 더더욱 손작업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는 터라, 어떻게 하면 손그림을 실제 책작업에 자연스럽게 적용할지 더욱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수작업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든 비용만큼 컴퓨터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을 보여줄 수 있으니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수채화 종이는 파브리아노 FABRIANO 중목의 경우 2절 사이즈가 11000원 정도, 아르쉬 ARCHES 중목 2절이 15000~19000원 정도 한다. 대략 두 배 가격인데, 둘 다 써본 입장에서는 사실 큰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다만 젖은 종이에 번지기 효과를 할 때 아르쉬지가 좀 더 오래 물을 머금고 있던 터라, 더 세밀한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 가격은 중목 기준으로, 세목(Hot pressed)도 가격이 비슷하며 황목(Rough)의 경우는 더 비싸다.
드럼 스캔비도 빼놓을 수 없다. 취미용이나 작은 삽화용 그림이라면 집에서 평판스캐너로 해도 되지만, 전체 그림을 인쇄용 디지털 그림으로 바꾸려면 드럼스캔을 해야 한다. 드럼스캔 비용은 A4 사이즈가 10000원, A3가 20000원이 넘는다. 하지만 보통 스캐닝 업체가 해당 그림의 가로와 세로 길이를 재서, 업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계산해서 단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림마다 가격이 다르다. 과거에 많던 충무로의 드럼스캔 업체는 디지털 시대에 하나씩 없어져서 이제 3곳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풀 수작업 작품들을 그림책 32페이지 기준으로 모두 스캐닝하면, 최소 32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스캐닝하면 할인도 많이 해주니까, 단골 업체를 만들어서 잘 네고해보자.
이렇게 얼추 계산해 보니, 클라우드와 포토샵 비용으로 월마다 최소 4만 원 이상이 나가는 걸 알게 됐다. 프리랜서 특성상 일이 없으면 최소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말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는데, 프리랜서란 참 고정비용이 많이 나가는 직종이구나 싶다. 여기에 작업실 대여비나 월세가 들어간다면 서울 기준으로 최소 +20~70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올해의 바쁜 일들이 모두 끝내서 이번 달엔 쉬엄쉬엄 놀고 있는데, 다달이 나가는 돈이 아깝지 않게 열심히 작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