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의 역설

by Stella Kim

아비투스의 역설은, 아마도 삶이라는 커다란 미로 속에서 무심코 발끝을 보고 걷다가 깨닫게 되는 모순 같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마치 카페 구석 테이블에 남겨진 찻잔처럼 받아들였다. 찻잔은 그 자리에 있지만, 안에 담긴 차는 이미 식어 있었다.


한 개인의 아비투스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속해 있던 세계가 나에게 심어준 것들이다. 부모의 무심한 말투, 동네 골목의 풍경, 학교 교실에서 맡은 먼지 냄새 같은 것들. 그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스며들어 내 행동과 사고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미 오래전에 내 안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삶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내가 속해 있던 세계가 변하거나, 아니면 내가 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아비투스는 마치 낡은 옷처럼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여전히 낡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작은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치자.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습관,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권고. 이런 것들이 당신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은 큰 도시로 옮겨,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기 시작한다. 호화로운 파티와 빠른 거래가 일상인 이곳에서, 당신은 여전히 소심하게 남아있다. 다른 사람들은 값비싼 와인을 마시며 웃고 있지만, 당신은 메뉴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을 고른다. 그 순간 당신은 깨닫는다. 내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과거의 내가 남아 있구나.


이것이 아비투스의 역설이다. 당신을 지탱해 주는 것 같지만, 동시에 당신을 묶어 두는 힘.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는 것 같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은 새로운 누군가가 되지 못한다. 나는 이 역설을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커피 잔에 남은 찻잎 무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 그림자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면, 그 그림자와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현명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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