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풀어야 할 문제들로 가득하다. 이 문제를 풀면 세상은 나아지고 보상이 돌아온다. 세상 모든 비즈니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에는 이미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존재하고 그 해법으로 이미 누군가가 돈을 벌고 있다. 설사 내가 그 돈을 버는 누구일지라도 더 좋은 해법을 찾아낸 누군가가 내 몫을 뺏어 갈 수 있다. 세상 모든 비즈니스는 이렇게 시작조차 되지 못하거나 망하곤 한다. 내 자리가 아니거나 내 자리를 빼앗기거나, 이 두가지는 세상 모든 비즈니스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런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저마다 해법을 들고 ‘비즈니스의 비즈니스’ - 컨설팅 회사들이 태어났다. 디자인 씽킹도 이런 해법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로저 마틴은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신뢰성과 타당성이란 두가지 큰 힘을 적절하고 균형있게 발휘하면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당 비즈니스는 번성한다. 이 해결책이 바로 디자인 씽킹이다' 라고 주장한다.
디자인 씽킹의 전개 방식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비슷하다. 과학이 설명해야 할 자연 현상은 ‘미스테리’와, 저마다 내놓는 해법은 ‘경험법칙'과, 정상과학은 ‘알고리즘’과 대응한다. 신비한 자연현상을 저마다 해법으로 설명한다. 어떤 해법은 과학이라 할 수 없을 정도고, 어떤 해법은 100가지 가운데 1가지만 잘 설명하고, 어떤 해법은 100가지를 모두 설명한다. 모두를 설명하는 해법은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고 과학자 사회는 패러다임 아래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를 수행한다. 정상과학의 단계에 들어선 패러다임은 성공한 기업과 비슷하다. 정상과학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발견했을 때 대부분 과학자는 사소하거나 오류거나 오차로 여기고 무시한다. v=v1+v2라는 아름답고 확실한 성공 공식을 버리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처럼 v=(v1+v2)/(1+v1v2/c2)이라는 복잡한 공식으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아주 특수한 경우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 실험에서 동료들은 오차나 오류라고 무시했던 실험값을 설명하려고 기존 물리학 체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념을 만들어낸 ‘양자(quantum)’가 물리학을 기반부터 흔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은 왜 이런 중대한 발견을 놓쳤을까? 지성이 부족해서일까? 쿤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과학이 쌓아놓은 세계가 너무 견고하고 그 속에서 과학자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마틴은 비즈니스 세계를 쿤처럼 풀어간다. 신뢰성으로 대표되는 기존 성공 방식과 타당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해법이 기업 내부에서 충돌한다. 과학은 뉴튼과 볼츠만으로도 세상을 훌륭하게 설명해왔지만, 아인슈타인과 플랑크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은 자신의 뉴튼과 볼츠만을 버리려하지 않는다. 마틴은 성공한 기업이 자신의 성공 공식으로 만들어낸 잉여 자원을 사소, 오류, 오차로 여겼던 문제에 재투입해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009년 마틴이 이 책을 출판할 당시 디자인 씽킹의 귀감이라할 수 있는 RIM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한 때 혁신이었던 기업 역시 언젠가는 구닥다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정상과학 체계는 과학자 세계의 하부구조(실험 기구, 실험실 구조, 보고서 작성법 등)부터 상부구조(이론을 해석하는 방식 등)까지 모두 아우르기 때문에 과학자가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쿤의 지적처럼 성공한 기업이 내부에 깊고 넓게 뿌리내린 성공 공식에서 헤어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한 다음 해법을 찾아야 한다. P&G 사례처럼 이미 성공 공식을 찾았던 대기업에게는 타당성이 필요한 분야는 외부에서 빌어 오는 방법도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마틴은 친절하지 않다. ‘7장 개인을 위한 디자인 씽킹’에서 개인이 디자인 씽킹을 연마하는 방법의 대강을 설명하긴 하지만, 이미 성공한 비즈니스에 올라타는 방법이나 그런 비즈니스를 대상으로 비즈니스하는 방법에 치우친다. 내가 비즈니스를 한다면 모든 자원이 아깝다. 실패할 여유가 없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존하기도 느긋한 마음으로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실패하더라도 긍정하며 타당성에 몰입하기도 어렵다.
내 ‘비즈니스' 를 위한 해법으로 ‘린스타트업(Lean Startup)’이 있다. 딱 필요한 만큼 타당성을 조금씩 입증하고 그 과정에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여 신뢰성을 조금씩 쌓아가는 방식인 린스타트업 방식과 타당성과 신뢰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태도-도구-경험이란 실천 방식을 가진 디자인 씽킹을 결합한다면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making one for you."
- Alan K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