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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는 매뉴얼에 있지만, 눈치는 경험에 있다

팀과 어울리며 익히는 직장 생활의 진짜 공부

by 서이담

회사에 들어갔을 때 업무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일은 배우면 되고 시스템은 매뉴얼에 따라 하면 된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누구와 함께 뭘 먹고 회식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의가 끝나면 누가 자료를 취합하고 다음엔 뭐가 진행되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당시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한 명은 나와 동갑이었고 두 명은 나보다 두 살인가 세 살 어렸다. 웹에이전시라 맡은 클라이언트가 다양해서 담당하는 브랜드가 전부 달랐다. 같은 부서는 맞았지만 하는 일은 제각각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회사 생활이지만 유쾌하게 다니고 싶었다.


정확히는 이왕 내게 주어진 일 힘들게 하기보다는 재밌게 파이팅 있게 하자고 매일 주문을 걸었다. 이 해맑음 때문에 내 직속 J 사수는 진지하지 못하다며 나를 혼냈다. 그때 알았다. 직장 생활에서 진짜 힘든 건 ‘일’이 아니라 일과 사람 사이를 읽어내는 눈치라는 걸.

일 사이에 흐르는 공기,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눈치의 세계는 꽤 어려웠다.

점심시간. 두 세명 혹은 세네 명이 무리 지어 식당으로 향한다. 엄마가 차려준 밥만 먹다가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사수가 나를 데리고 일층에 있는 밥 집으로 향했다. 사수의 직함은 대리였는데 사수와 함께 밥 먹는 무리들은 비슷한 ‘대리’ 거나 ‘과장’이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어색함이 흘렀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오, 육 년은 더 해봤을 텐데…….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바짝 졸아있었다. 식탁에 앉았는데 할 일이 없자 맞은편에 앉은 과장님이 수저를 세팅했다. 침묵도 잠시 내 손도 함께 움직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시킬지 모르기에 메신저는 물론 이메일 확인은 필수다. 신입들이 참여한 회의에서도 먼저 손들고 눈치 빠른 누군가가 움직이는 침묵의 규칙이 존재했다. 한 날은 팀 전체회의에서 부장님이 단발성 브랜드 이벤트였나 홈페이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장님의 시선이 회의실 주변을 빙 돌았다. 누가 해야 할지 스케줄을 보며 정하려고 팀원들을 훑어보고 나는 시선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부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OOO 페이지. 중간중간 짬 내서하면 될 거 같은데 한번 해 볼래?

그때까지 나는 일 쳐내는 걸 할 줄 몰랐다. 정확히는 하면 혼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예스걸이었다. 얼떨결에 끄덕인 나는 단기성 일을 하게 됐는데 회의가 끝나자마자 J 사수에게 혼났다.

“다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해. 지금 해야 할 게 산더민데”


그러니까 나는 지금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진행해야 할 업무도 많으니 하면 안 된다고 했어야 됐다. 기획서 스토리보드를 그리며 설명글을 쓸 때 철자나 화면 구동 디테일을 신경써야했다. 스토리보드 업데이트 시 변경된 날짜와 버전 쓰기 등 아주 사소한 거 하나하나를 직접 하게 됐다. 규모가 큰 이벤트의 경우 코딩과 개발이 붙었고 납기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먼저 전화나 이메일로 물어봐야 했다.




사람마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색깔은 각자 다르다. 나는 어떤 타입일까? 일을 하며 알았지만 답답한 걸 싫어해서 그때그때 물어본다. 스케줄이 넉넉하면 이때까지 해달라고 말하고 넘기지만 연락이 안 되면 계속 물어봐야 한다. 시스템 상 이슈가 생기거나 완성되지 않은 페이지는 열 수 없다. 모든 상황이 항상 백은 아니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그때는 J 사수의 말 모든 게 맞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계속 그녀와 일을 하며 사수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다. 사수는 곧 내 바로 위에 사람이었으며 업무를 했을 때 확인받아야 할 존재였으니. 모르면 물어보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어리숙해 보일까 봐’ 스스로 눈치를 굴려 행동하다 혼이 났다.


J 사수는 회의실로 나를 불러서는 차라리 모르면 물어보라고 말했다. 눈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칸 그게 바로 조직생활이구나를 깨달았다.
전형적인 T형 인간 J 사수는 해맑은 내가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았을 테지.

반면에 나는 우리 팀 사람들은 물론 다른 팀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원 플러스 원 초코바를 사면 디자인팀 담당 사원에게 주며 진행 상황을 묻거나 수정사항 문서를 보며 말로 한 번 더 설명했다. 코딩, 개발팀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잘 모르는 게 많으니 서로 알려주고 잘하자고 말했다. 이 또한 J 사수의 눈에는 눈엣가시였다. A 디자이너는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이니 너무 오냐오냐 잘한다고 해주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본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리고 함께 하는 작업자인데 왜 친해지면 안 될까? 사수는 나를 정말 싫어하는 걸까?


상사의 기분을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팀이라는 조직 속에서 나를 어떻게 자리 잡게 하는가다. 수습 3개월이 끝날 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래서 도달한 내 안의 퀘스천 마크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일은 센스가 필요하며, 눈치는 경험의 연속이다. 가르쳐 주기보다는 부딪히고 실수하며 옳고 그름을 정의 내리는 감각 말이다.

그 감각을 몸에 체득하기까지는 나도 몇 년이 걸렸다. 업무, 생활, 인간관계 전반적인 모든 일상을 통틀어 조직이라는 흐름에 스며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첫 직장에서 실수 한 번 했다고 세상이 꺼진 것처럼 자책하지도 실망하지도 말기를. 윗사람들도 똑같은 신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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