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가 아닌 내 시간이 필요해
"틈새시간을 잘 활용해 보세요"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 서적이나 강연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출퇴근길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점심시간엔 책을 읽고,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주말엔 취미를 즐기라는 조언. 말만 들으면 하루가 48시간쯤 되는 것 같다. 현실은 다르다. 특히 신입사원이라면 점심시간조차 자유롭지 않다. 상대방의 밥 먹는 속도를 신경 쓰고, 상사 눈치를 보며 대화에 끼어들어야 한다. 그나마 조용한 시간을 찾으면 회의 알람이 울린다. 제일 편한 건 내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짧고 굵게 자는 것이다.
신입 웹 기획자 는 늘 피곤하다. 항상 위기에 대처해야 하고, 일이 터지면 야근은 필수다. 대행업체기 때문에 ’을‘이라 광고주가 오케이 할 때까지 집에 못 간다. 지금도 적용되는지 모르지만 당시 회사는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면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출근할 수 있었다. 한 시 출근이 꿀이라고? 생활패턴이 한번 틀어지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까 한번 야근을 하고 오후 출근을 하게 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야근 지옥에 빠지게 된다. 이십 대여서 가능했던 야근, 지금 하라면 절대 못 한다.
애초에 야근을 해야 된다는 회사는 못 간다.
상황에 따라 시즌별로 어쩌다 한번 할 수 있을지언정 계속하면 몸이 망가진다.
이런 탓에 내 시간을 낼 수 없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전부니까. 그런데 과연 그 상황에서 자기개발과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까.
틈새는커녕 숨 고를 시간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야근이 일상인 분들이 몇몇 있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워커홀릭이다, 일 안 끝나면 집에 안 가는 분, 매일 늦게 퇴근하는 분으로 불렸다. 오랜 시간 프로젝트를 해서인지 야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디자이너 대리님이었다. 광고주의 자잘한 디자인 수정사항이 생기면 바로 작업해 줘야 했기에 대리님은 회사에 살다시피 했다. (집엔 갔겠지만 그 당시엔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다행히 나는 이벤트 PL을 할 당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밤샘 업무를 하지 않았다.
몇 번 철야를 한 적은 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만들어진다
시간이 흘러 경력이 쌓이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업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우선순위를 구분하는 눈이 생기자 하루에 잠깐씩 ’나만의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광고주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공백의 시간, 할 일들을 다 쳐내고 시간이 남을 때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만의 글을 쓰거나 혹은 마케팅 트렌드나 업종 근황들을 찾아 읽었다. 지하철을 환승할 때 스토리보드를 쓸 때, 밥을 먹다가…….
불현듯 주제가 떠오르면 메모장이나 한글파일을 켜 글을 적었다. 정말 좋은 글감이나 소재는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바쁠 때는 카카오톡 내게 보내기로 짧게 단어나 생각나는 문장을 적었다. 쌓이는 연차만큼 여유도 생겨 가끔 내 시간도 생겼다. 짧은 메모는 한 편의 글을 완성 시켰다. 시간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신입사원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이지만 몇 년이 지나 짬밥이란 게 생기고 나만의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야근이 이어지는 날에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틈새 시간 활용이라는 말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다. 직장인에게 자기개발은 거창한 공부가 아니라 짧아도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내는 작은 의지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