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사는 작은 희망
퇴근길 복권 두 장을 샀다. 동네 복권 명당이라고 소개된 곳에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수험생 때 오엠알 카드에 마킹을 하듯, 고심하며 용지에 체크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가 흘렀다. 회사에 다닐 때 매 주는 아니지만 복권을 샀다. 사회 초년생 시기, 처음에는 수동, 자동이 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 어떻게 하냐고 물을 성격도 못됐다. 그러다 직장 동료를 따라 복권가게에 들러 구매 방법을 알게 됐다. 나는 어리버리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 생활은 늘 비슷하다. 끝나지 않는 회의, 채워지지 않는 성과, 매달 찍히는 똑같은 월급명세서. 직장인의 하루는 회전목마처럼 돌고 또 돈다. 그런데 복권 가판대나 편의점 앞 커피 대신 복권 한 장을 집어 드는 순간, 지루한 회전목마가 잠시 다른 방향으로 돈다. 누군가는 허망하다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희망을 사는 작은 의식이다.
지난주, 지지난 주 두 장씩 샀는데 각각 5000원이 당첨됐다.
“번호를 고를 때 좀 더 신중할걸” ‘이 번호 좋아하는데 넣을걸“ 꼭 번호가 발표되고 나서야 후회한다. 무던한 직장인의 하루는 복권을 살 때면 기대감으로 바뀐다. 내일이 바뀔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다음 주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
주변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감탄과 함께 '혹시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매달 100만 원씩 자동으로 복권을 산 사람이 1등에 당첨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동안 구매했던 수북이 쌓인 복권 용지 인증샷이 이목을 끌었다. 그는 복권 사는 행위를 ’ 투자‘라고 칭했다. 먹고살기 위해 꾸준히 연차를 쌓는 직장인처럼 말이다.
신입사원 시절 일이 힘들 때 한두 장씩 복권을 샀다. 어느 날은 연금복권도 샀다. 돈을 한꺼번에 수령하는 것보다 월급처럼 다달이 받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당첨여부도 모르면서 김칫국부터 마신다.
"이 망할 놈의 회사 내가 당첨만 돼봐. 정말 쿨하게 사직서 쓸 거다"
혼자 으름장을 놓으며 외치면 잠시나마 꿉꿉했던 기분이 풀어졌다.
큐알코드를 찍고 기다리는 몇 초 사이 수험생이라도 된 것처럼 긴장된다.
에잇 또 오 천 원 됐어
아쉬움에 친구에게 괜히 찡얼댄다.
"오 천 원이 어디야 "
친구는 다 꽝인 거보다 낫지 않냐고 나를 위로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웃어넘기며 서로의 버팀목을 확인한다. 한 잔의 커피값이 일시적인 각성을 주듯 복권 한 장은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기대감을 준다. 오천 원으로 산 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희망이기에. 5000원짜리 복권은 가장 현실적이고도 낭만적인 투자다.
요즘은 복권 명당을 찾아가는 재미에 빠졌다. 많은 금액은 아니어도 명당에서 사면 좋은 기운을 받아 2등, 3등이라도 될 것만 같다. 꾸준히 산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의미니까. 복권은 당첨의 꿈을 넘어, 반복되는 회사 생활 속에 작은 기쁨을 전해준다. 지루한 직장인에게 균열을 내는 작은 의식.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 값진 당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