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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하는 동안 나를 정돈하는 시간을 갖는다

실이 마음을 안내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최물결

최근에 내게 작은 취미 하나가 생겼다. 십이월은 비수기라 일이 없어 빈 시간이 많은 편이다.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마음만 성급해지고 불안해하다 보면 이내 우울이 찾아온다. 그래서 조용히 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똥 손이어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 털실을 구매했다. 수면바지처럼 제법 따뜻해 보이는 보들보들한 재질에 통통한 실 들이 나를 반겼다.


스스로 똥 손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할 수 있을까? 뭐든 처음 하기 전에 스스로를 또 의심부터 했다. 나는 시작해서 정말 못 할 거 같으면 단칼에 끊어내는 사람이다. 반면에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집중하곤 한다. 뜨개질은 후자에 더 가까웠다. 처음 만든 분홍색 목도리는 꽤 형태를 갖췄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삐뚤빼뚤 마감 모양이나 매무새가 어색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목도리.jpg 열심히 떠서 완성시킨 두 번째 목도리다


특히 초반부에 연결한 실을 보니 코와 코 사이가 엉성한 게 꽤나 웃겼다. 바늘 대신 손가락이 바늘 역할을 해 매듭과 고리를 만들고 연결하고 무한 반복이다. 첫 번째 목도리를 완성시키고 나니 두 번째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촘촘하고 확실하게. 한 가닥 실이 손을 통과해 고리를 만들면, 아무것도 아니던 선이 하나의 면이 되고, 그 면이 어느 순간 무늬가 된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늘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분명 내 손에서 태어난 것.' 그 묘한 감정이 뜨개질의 중독 같은 즐거움이다.
회색 털실로 만든 두 번째 목도리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이 정도면 지인에게 선물해도 될 것 같다' 스스로 목도리의 모습을 보며 목에 둘러봤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신기하게 점점 뭔가 돼가는 게 보인다. 실의 양은 같아도 촘촘하고 느슨함 정도에 따라 완성된 모습이 달라 보였다.


뜨개질은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 어떤 취미처럼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다. 한 코, 한 코 떠나갈 때마다 생각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사라진다. 나는 손이 느린 편인데도 계속하다 보니 속도가 붙었다. 남들은 한 시간 만에 하던걸 세 시간 걸려 했는데 말이다. 뜨다 보니 웬걸 자꾸 욕심이 생겼다. 가방도 모자도 또 강아지 담요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가방을 떴다. 미니 도트 백을 완성시켰는데 키링을 달아주니 꽤 귀여웠다.


가방.jpg 조카에게 가방을 선물할 것이다


어제는 실 여섯 묶음과 대바늘 코바늘 세트를 구매했다. 뜨개질 덕후가 된 건 한순간이었다. 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급하게 뜨면 모양이 비뚤어지고, 숨을 한 번 돌리고 천천히 뜨면 결도 고르게 정리된다. 또 나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뜨기도 한다. 그래서 뜨개질은 그날의 나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기록이 된다.


'아 오늘은 내가 좀 급했네'

'촘촘한 게 이날은 차분하게 잘 떴네'

완성된 조각을 바라보면 과거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손에 잡히듯 떠오른다.


조금씩 완성되어 형태가 갖춰지는 모습이 이상하리 만큼 기쁘다. 무엇보다 뜨개질은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온다. 실의 감촉, 바늘과 손을 통과하는 소리,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 모든 것이 명상을 하듯 마음을 다 잡아준다. 그러니까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모든 감각을 꺼내 집중한다.


완성품이 꼭 대단할 필요는 없다. 머플러든, 모자든, 가방이든 그 안에는 내가 보낸 시간과 마음이 스며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만들 걸 선물한다면 더 특별해진다. 얼마 전 친구에게 목도리 사진을 보내며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자랑했다. 친구는 내게 '바라클라바'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왕초보인 내게 바라클라바는 도장 깨기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만드나 궁금해서 자기 전에 유튜브와 블로그를 열심히 검색했다. 귀와 머리를 덮으면서도 목까지 따뜻하게 연결해 주는데 딱 봐도 따뜻해 보였다.


뭐 안될 것도 없지 않은가? 실을 감아서 손으로 쥐어본다. 오늘의 마음이 어떤 모양으로 뜨여 나올지 궁금해하면서.


그 모습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뜨개질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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