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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다시 부르는 일 : 브런치 필명을 바꿨다

나를 믿기 위해 다른 나를 선택했다

by 최물결

사람은 평생 이름을 부르며 살지만 꼭 한 번쯤은 “이게 정말 나와 맞는 이름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름은 가장 오래된 고유 언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잊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애 처음 받는 선물처럼 반짝이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 개명을 했다. 점집을 찾아가거나 누군가의 권유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 지금 이름으로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정확히는 철학원에서 이름을 받아 세 개중에 골랐다.


놀랍게도 정말 옛날이다 스물한 살이었나 스물두 살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좀 더 편안해졌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스스로 괜찮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브런치 활동을 하며 두 번째로 이름을 바꿨다. 나는 보통 하나를 정하면 끝까지 밀고 가는 편인데 글을 쓰며 어울리는 이름을 꼭 찾고 싶었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본명을 쓰기도 하는데 마음에 드는 필명을 꼭 짓는다. 처음에 쓰던 필명 '최라라'는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당시 라라랜드 영화가 인기를 끌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며 '최라라 귀엽네'하며 브런치 이름으로 설정했었다. 이후로 한동안 브런치를 안 하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 매일 같이 글을 업로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하나. 필명을 제대로 지어보자. 작명가 선생님한테 가서 돈을 내고 짓기엔 아까우니 챗 GPT한테 물어보자며 핸드폰을 꺼냈다.


늘 입버릇처럼 듣던 말 하나가 있었는데 내 사주에는 오행 중 물이 부족하단다. 홍대에서 길 가다 심심풀이로 이름 풀이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물을 가까이해야 한단다. 항시 물을 자주 먹고, 집에 어항을 가져다 놓으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름에 꼭 물을 넣고 싶었다. 최라라에서 서이담으로 변경했는데 뭔가 나랑 결이 맞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공주님 같고, 도도하고 화려해 보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서이담이라는 이름 안에는 물에 관련된 한자 획수가 들어간다.


브런치에서 필명 변경을 하면 삼십일 동안 바꿀 수 없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또 하나는 필명을 바꿔버리면 브런치 관계자분들이나 내 글을 읽어주는 몇 안 되는 고마운 분들에게 잊히지 않을까 살짝 두려웠다.


며칠 동안 생각하다 가감 없이 브런치 이름을 바꿨다. '최물결' 너무 마음에 든다. 직관적이고 이름만 봐도 물이 넘실대는 것만 같다. 필명을 자주 바꾸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 아닌가. 수십 번 수 백 번 바꿀지언정 나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스스로가 흡족하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만큼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게 필명을 지어준 H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필명은 바뀌어도 글을 쓰는 나는 계속 남아 있다는 것. 계속 남아있는 나를 좀 더 아끼고 다독이기 위해 오랫동안 쓸 이름을 정한 것뿐이다.


'브런치 독자'님을 저 이제 최물결작가라고 불러주세요.

열심히 글 위에서 헤엄치며 나아가야지. 어떤 물결의 모양 일진 모르지만 이름을 닮은 사람으로 거듭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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