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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라고 불렸던 개들의 진짜 이름은

내가 본 것은 경계심 없는 눈빛이었다

by 최물결

평소와 다름없이 반려견과 산책길에 나섰다. 동네 몇 바퀴를 돌다가 낙엽이 반쯤 떨어진 길목에서 목줄 없는 개 두 마리를 만났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뒷산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고 다른 한 마리는 내 쪽으로 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나는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줄이 없으면 공격성이 있든 없든 달려들 수도 있기에. 나 또한 녀석이 무서웠는데 그냥 가기에는 발걸음에 자신이 없었다.


시바견 같기도 하고, 진돗개같이 생긴 누렁이었다. 녀석의 눈빛은 날카롭지도, 도망치듯 흔들리지도 않았다. 녀석이 다리를 들고 마킹한다. 강아지들이 마킹 한 오줌 자국 위에 한 번 더 자신의 영역을 알렸다. 그리고 나에게 올 듯 말 듯 오묘한 눈빛을 보냈다. 마치 “여기 지나가도 되나요?” 하고 묻는 것처럼 천천히.


나는 혀를 쪽쪽쪽 차며 녀석을 불렀다. 뼈가 앙상하지는 않고……. 털빛깔도 괜찮은 거 같은데.
도망친 아이라면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손에 든 간식 봉투에서 사료와 간식을 꺼냈다.
혹시 배고플까, 물진 않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오던 관리소 아저씨들이 말을 걸었다. “가까이 가지 마요. 들개예요, 물 수도 있어요”

아저씨 중 한 명이 안 된다고 손짓을 했다. 큰 목소리에 놀랐는지 녀석이 다른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나는 다시 녀석을 불렀지만 좀 전에 함께 있던 녀석의 친구가 간 방향으로 간 것으로 보아 친구를 찾는 것 같았다. 아까 부르지 말걸 괜히 의지하던 친구를 잃어버린 거 아닌가. 녀석에게 미안해졌다. 녀석이 떠나고 혹여나 다시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사료를 뿌려놨다. 녀석은 아저씨들이 말한 대로 정말 들개였을까.


내 뒤편에 있던 산책을 하던 비숑 견주도 놀랐는지 자신의 반려견을 안고는 내 쪽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좀 전 상황을 되새김질했다. ‘들 개’ 한 번 붙는 순간, 존재 전체가 설명되어 버리는 단어. 생각해 보니 당근에서 녀석과 닮은 개 사진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위험하고 난폭하고, 지역을 배회하며 사람을 위협하는 이미지. 아니 그렇게 따지면 비둘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본 건 금빛처럼 빛나던 털, 흙냄새를 맡으며 마킹하던 모습,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던 눈빛이었다. 조금만 더 달래면 내게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쓰여 하는 이유는 어떤감정일까? 연민일까. 걱정일까, 오지랖일까?


지인은 불쌍하다고 다 도와주면 책임은 네가 져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아저씨 말씀처럼 진짜 들개 일수도 있고, 집 나온 지 얼마 안 된 개일 수도 있겠지. 또는 아무리 착한 개라도 놀라서 나도 모르게 사람을 물 수도 있는 거고.


사람들은 위험을 먼저 떠올렸지만 나는 이상하게 녀석의 ‘조심스러움’을 먼저 느꼈다. 들개도 처음부터 들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생존법을 터득하고 있을 테지.


생각해 보면 들개라는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너무 빠르게 자란다. 목줄이 없으면 들개, 주인이 보이지 않고 중형견보다 조금 더 크면 들개, 사람 손에 익지 않으면 들개. 하지만 그 말은 사실 우리가 이해하려는 과정을 생략할 때 붙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두 마리의 개는 관리소 아저씨들의 시선에서는 분명 위험요소였겠지만 내게는 길을 잃은 두 명의 떠돌이 유랑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반려견 자두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냄새를 따라 바람결을 따라 총총 총 걷는 귀여운 녀석. 신경 쓰이는 녀석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자꾸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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