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벤치 위에서 강아지가 침묵을 깨준 어느 오후
화창한 오후의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려견 자두와 산책길에 나섰다. 내가 산책을 한다기보단 강아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편에 가깝다. 우리가 다니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는데 오늘은 옆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큰 신호등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되는 거리.
이삼십 대 일인 가구와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아파트다. 굳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 아파트 단지보다 넓어서 걷기가 좋고 또 눈치 볼 일이 없이 없어서다. 또 일인 가구가 많은 탓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자취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많아서인지 낮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편하다.
자두도 이곳을 좋아한다. 최근에 편의점 앞쪽에 쉴 수 있는 정자와 벤치가 설치됐다. 주변으로는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데 풀 냄새 맡는 걸 꽤나 좋아한다.
강아지가 많은 곳이라 해서 조심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어른이나 아이들은 아무리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강아지라고 할지언정 피한다. 그럴 때는 하네스를 최대한 짧게 당겨 내 옆에 밀착시키고 지나간다.
이곳에는 군데군데 개 똥도 많다. 아무리 똥이 거름이 된다지만 화단에 눈을 집중시키면서 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 최근에는 똥을 싸고 한쪽에 그냥 두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구석에라도 몰아넣고 가면 다행이지 길 한가운데 싼 배설물이 있을 때는 정말이지 내가 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던 어느 날이었다.
이웃과는 딱히 친하게 지낼 필요성을 못 느낀 건 오래됐다. 교류가 없는 탓이기도 했고 딱히 친하게 지내봤자 도움 되는 게 없지 않나. 그럼에도 자두와 산책을 가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말을 하게 된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는 녀석은 눈을 마주치거나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을 보고 꼬리를 흔든다. 한마디로 친화력 만렙이다. 사람이 있어도 낙엽이나 풀이 있어서 냄새 맡기에 급급하다.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강아지를 보기 위해서다. 요새 젊은것들은 애는 안 낳고 강아지만 물고 빤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이전 아파트에서 목줄을 안 하고 다니던 할머니 견주와 크게 싸운 적도 있었다. 이곳에 전세 냈냐며 왜 목줄을 해야 하냐고 박박 우기던 할머니. 분명 우리 강아지한테 달려들었는데 아니라고 좋아서 온 거라고 하던 할머니 덕에 이웃이란 단어에 알레르기가 잔뜩 나 있었다.
느리게 걷던 할머니가 자꾸 이쪽에 눈을 맞췄다. 나는 혹여나 피해를 줄까 봐 반대편으로 피했는데 할머니가 강아지를 보며 말을 걸었다.
“할머니한테 인사하러 안 올 거야?”
쪽쪽쪽 강아지 부르는 소리를 내며 미소 짓는 할머니를 보고 있잖니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냄새 맡아? 뭐가 궁금한데?”
정말 손녀를 보듯이 다정하게 자두에게 말을 거는 할머니를 보니 웃음이 났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건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뿐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맞은편에 오던 다른 할머니는 자두를 보면 ’ 이쁜이‘라고 불렀다. 나는 할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매번 '우리 이쁜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말투를 기억했다. 노인정을 지나 곳곳에 있는 벤치를 걸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걷다 보면 자두가 똥을 싸는 일명 똥 스폿도 보였다.
산책을 하다 보면 종종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을 갖는 편이다. 쉬는 동안 자두에게 간식도 주고 앉아 엎드려 훈련도 시킨다.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구석진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옆에 또 다른 할머니가 잠시 쉬었다 간다며 내가 앉은 곳 바로 옆에 앉았다. 벤치는 참 많은데 왜 여기로 오시지 비켜드려야 하나…….
예상 못한 시나리오에 당황해 멋쩍게 앉아 있었다. 역시 침묵을 깬 건 반려견 자두였다. 할머니한테 아는 척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자두를 보고는 예쁘고 착하다며 옷이 따뜻해 보인다며 칭찬을 했다.
“자두야 손. 앉아. 잘했어”
나는 할머니께 보란 듯이 자두의 개인기를 보여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예전에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서 다리를 문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놀란 눈으로 목줄은 했어요? 주인 연락처 받아야죠. 당사자보다 더 놀라 두세 마디를 더 하고 있었다. 괜찮은 거 같아서 그냥 보냈는데 집에 와서 다리를 걷어보니 내복이 찢어져 있었다고. 아파서 고생을 했다고 털어놓으셨다. 나는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인상착의와 강아지 생김새를 물었다.
얼마 전 본 들개 이야기도 해 드렸다. “얘 털갈이는 해요?” 털이 빠지지 않냐며 묻다가 할머니는 친척이 키우는 고양이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아지로 인해 어색함이 풀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짧지만 긴 시간처럼 담소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 가족으로 살기 위해서도 있다지만 강아지는 때때로 우리 대신 세상과 말을 섞어준다. 낯선 사람과 나 사이에 조용히 놓이는 작은 다리처럼.
그날 이후 나는 산책길에서 사람을 완전히 피하지 않게 되었다. 혹시 모를 불편함보다 자두가 만들어낼지도 모를 대화를 조금은 믿어보기로 했다. 벤치 위로 따뜻한 공기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