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되고 싶던 어린 마음의 선택
어린 시절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이유 중 하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섯 살에서 일곱 살 무렵 아이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이 다니는 학원이 존재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같은 유치원 혹은 동네 친구들이 있었기에 사랑방이나 다름없었다.
피아노를 치는데 흥미를 느끼는 건 맞았지만 어린 나는 친구들과 한마디 더 나누는 게 중요했다.
당시에 단짝 친구였던 예진이도 나와 같은 학원에 다녔다. 예진이보다 진도를 더 앞질러나가려고 혹은 더 잘하고 싶은 맘에 더 빠르게 정확히 건반을 짚던 기억이 났다.
어느 날 내가 다니던 학원의 같은 층 반대편에 새로운 피아노학원이 생겼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노란색 학원 가방이 정말 갖고 싶게 생겼었다. 손으로 들 수도 있고 옆으로 끈을 늘려 맬 수도 있는 가방이었다. 학원 이름도 큼직하게 앞부분에 적혀 있었다. 성인인 내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봤다. 어린아이들이 삼삼오오 병아리처럼 줄지어 노란 가방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새 피아노학원이 생기며 기존 피아노학원에서 옆 학원으로 옮긴 아이들이 생겼다. 그게 아니라면 학원에 간 신규 학생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태권도 가방을 멘 아이, 미술 도구를 든 아이, 그리고 눈에 띄는 게 노란색 피아노 가방이었다. 가방은 유난히 단정해 보였고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끈. 그걸 매고 걷는 아이들은 마치 하나의 무리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가방이 들고 싶었다. 피아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가방을 멘 아이들 쪽으로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과 속하고 싶은 것이 자주 헷갈린다. 나는 그 둘을 구분할 만큼 영리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엄마를 졸라 피아노 학원을 바꿨다. 아이들이 대부분 다니는 곳으로. 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매고 있던 가방이 있는 쪽으로. 연습 곡이 늘지 않아도, 손이 빠르지 않아도 나는 그 가방을 멘 순간만큼은 어딘가에 제대로 소속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학원은 규모가 꽤 컸고 연습 방도 많았다. 선생님도 두 분이나 계셨는데 나는 그다지 튀지 않는 학생이었다.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이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거에 개의치 않을 만큼 그냥 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돌이켜 보면 참 사소한 이유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연주보다 덜 중요한 선택이고, 굳이 학원까지 옮길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실력보다 먼저 내 자리를 갖고 싶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라서도 비슷한 선택을 반복한다.
어떤 일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어떤 무리에 속해 있고 싶어서, 어떤 이름표를 달고 싶어서, 어떤 가방을 들고 싶어서.
회사, 직함, 명함, 역할.
어릴 때의 피아노 가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에 들어가면 조금 안심이 됐다가 밖으로 나가면 괜히 불안해지는 것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가방이 없어도 괜찮다. 어디에 속해있지 않아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 생겼고, 굳이 같은 모양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유난도 허영도 아니었다. 그건 그 나이의 내가 세상에 다가가는 방식이었고, 나름대로 내 생각을 옮긴 용기 있는 선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