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던 몸의 한가운데
배꼽이 아프다. 처음엔 간지러워 두어 번 긁었는데 세게 문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가 고개를 숙여 배꼽을 쳐다봤다. 튀어나와 볼품없는 뱃살이 출렁였다.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었는데 물인지 진물인지 극소량의 액체를 마주했다.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찌든 내라기보다는 강한 삭힌 치즈 비스름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처음으로 내 배꼽 안을 들여다봤다. 사실은 살에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아 커다란 손거울을 배 맞은편에 놓고 들여다봤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심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유방암과 자가면역질환 약을 먹고 있는데 이젠 배꼽이라니……. 인터넷을 검색하니 배꼽 관련 질환들이 연관 검색어처럼 줄줄이 나왔다. 배꼽염, 충수염, 대장염. 스스로 병을 특정 짓고 상상하기 싫으니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엔 피부과에 갔는데 뭔지 확인하려고 두어 번 긁은 상황을 이야기하니 자극이 갔을 거라며 의사는 내 손을 탓하듯 말했다. 에스로반 연고와 항생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았다. 물을 최대한 멀리하라는 당부를 했다. 배꼽은 약하디 약한 부위라 샤워를 하고 잘 말려야 하고 일부러 자극을 주면 안 된단다.
약을 사일 치 먹고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안쪽부터 또 물이 고인 느낌이 들어 상의를 올려 배꼽을 들여다봤다. 너무 안쪽이라 그런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약도 먹었고, 연고만 조금 더 바르면 말겠지 대수롭게 여기며 일상을 이어갔다.
초반에는 그저 간지러운 정도였다. 옷이 스치면 조금 신경 쓰이는 느낌. 며칠 지나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려운 건 둘째치고 전날보다 고름이 더 나오고 악취도 심해졌다. 나는 소독이 안 됐을 거라 생각해 연고를 바르기 전 알코올 스와프로 배꼽을 닦았다. 겉으로는 흰색 물 같았는데 닦아내니 연둣빛 염증 액체가 묻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은 분명해졌다. 습기가 차고, 열이 나는 듯하고, 통증이 생겼다. 나는 그제야 배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십 일이 지나서야 상처, 흉터, 화상 전문 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복강경 수술을 한 적도 없는데 안이 다 헐어있다고 말했다. 이상한 일인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며 배꼽 드레싱을 이어갔다. 대학병원의 류마티스내과 선생님께서는 면역력이 약해져 배꼽 속 껍질이 벗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몸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 것 같아 괜히 화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배꼽은 보이지 않는 자리다. 정확히 말하면 보지 않기로 선택해 온 자리다.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고,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눌려 있고, 접혀 있고, 항상 옷 아래에 가려져 있는 곳. 그래서 조금 불편해도 참고 넘어가게 되는 곳. 그동안 나는 배꼽을 그렇게 대해왔다. 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늘 뒤로 밀려난 채로. 염증이 생기고 나서야 알았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감각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앓는 소리를 낸다.
병원 베드에 누워 의사에게 배꼽을 보여주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라면 굳이 꺼내 보이지 않았을 자리. 스스로에게 숨기듯 지나쳐왔던 곳을 타인 앞에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왠지 모를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배꼽을 보여주는 건 괜찮은데 냄새가 역할까 봐 괜히 신경 쓰였다.
의사는 전에 먹던 항생제 대신 좀 더 광범위한 항생제를 처방해 줬다. 연고를 바르다 보면 배꼽이 습해질 수 있다고 포비돈 같은 소독약으로만 소독하고 잘 말려주라고 말했다.
배꼽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는 늘 마지막에 말을 건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눈 검사, 류마티스내과, 유방외과 정기적 검사를 다 마쳐서 한시름 마음을 놓았는데. 배꼽이 아프니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씻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쳐온 몸의 그림자 같은 부분들이 떠올랐다. 괜찮을 거라 넘겼던 피로, 이유 없이 가라앉았던 기분, 애써 무시했던 불안 같은 것들.
배꼽 염증을 검색하니 신생아들의 배꼽 이미지만 나왔다. 배꼽은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엄마와 나를 연결하던 자리. 생명을 건네받던 중심. 그 역할이 끝났다고 해서, 완전히 의미가 사라진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며칠 약을 먹고 소독을 하니 진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배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자리일수록 먼저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몸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던 곳이 가장 아픈 법이란 걸 사소한 통증을 통해 배웠다.
배꼽의 습성은 내 삶의 어떤 자리와도 닮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어왔던 감정들. 늘 바쁘단 이유로 언젠가 정리하면 된다는 핑계로 미뤄둔 마음 접힌 부분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에 습기가 차고 있던 시간들.
배꼽은 그림자 같은 자리지만 결코 사라진 자리는 아니다. 나의 삶도 지나간 시간들도 마찬가지겠지. 자기 전 소독을 하고 손거울을 통해 맞은편에 마주한 배꼽을 지긋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