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육아의 끝은 고요함이다

하루 루틴을 다 마치고 나서야 허락되는 한 잔의 시간

by 최물결

이천이십삼 년 시월은 내게 참 아픈 달이었다. 아프고도 미안하고 또 고마운 달. 일전에 브런치를 통해 강아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피하 수액 하는 강아지」, 「강아지가 내 팔을 핥는 이유」 등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 그리고 한동안 반려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무지개 별로 간 딸기를 생각하면 가슴 끝이 따가웠다.


새벽에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이 년이 지난 지금 머리에 선명하게 맴돈다.
차라리 아프지 않게 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로부터 일 년 후 다시는 개를 안 키운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지만 내게 다른 아이가 찾아왔다.
강아지를 키우며 걱정되는 건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뒷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며 지금 행복한 일상에 충실하기로 다짐했다.


녀석은 조용한 듯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으며 낯을 가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람을 좋아했다. 이 전 주인과 살았을 때 다른 강아지들과 같이 살았다는데 어떤 생활을 한 것일까. 첫째 딸기도 둘째 자두도 나는 녀석들의 과거를 잘 모른다. 다만 지금 보이는 행동으로 이전 기억은 이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밥 주는 게 제일 힘들지”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진다는 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육아를 시작하며 의외로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밥 주는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사료를 덜고, 물을 갈고, 그건 손이 아니라 거의 반사 신경으로 할 수 있다. 내 몸이 힘들어도 하루에 한 번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산책. 내가 옷을 입고 준비를 하면 강아지는 알아서 주변을 서성인다. 강아지 이동 가방이라도 잠깐 손으로 스치면 들어가겠다고 왕왕 짖어댄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산책코스를 따라 냄새를 맡고 마킹을 하고 일정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배변활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삼십 분이 훌쩍 가 있다. 내 옆을 졸졸졸 따라다니다가도 맞은편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눈을 맞추며 꼬리를 흔들어댄다.


비 오는 날엔 비 오는 대로, 바람 부는 날엔 바람 부는 대로 우리는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간다. 나는 패딩을 입으며 무릎이 아프다고 혼잣말을 하며 투덜대지만 자두는 늘 같은 표정이다. 세상에 이렇게 공정한 존재가 있을까 싶다. 저녁이 되면 또 다른 공식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밥을 먹고 양치와 눈물자국 닦기 시간이 찾아온다. 자두는 이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서 있는 표정에는 분명한 항의가 담겨 있다. 억울하다며 끝내 몸을 내주는 녀석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 나는 녀석에게 보상으로 간식을 준다. 그래서 자두는 군말 없이 참는다. 힘들지만 참는 거. 강아지도 기다림이란 걸 배운다.




개육아가 사람 육아에 비하면 고단하지는 않다. 적어도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얼마 전 친한 언니의 두 아이들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네 살, 두 살 두 아들. 네 살짜리 아이는 말을 하면 알아는 듣는데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많았다. 두 살 아이는 형을 따라 똑같이 행동했다. 형이 장난감을 치우면 따라 치우는 시늉을 하고, 장난감 미끄럼틀을 발로 쿵쿵 차면 똑같이 따라 찼다. 아들이라 놀아주고 놀아줘도 지치지 않아 금방 어지르고 언니는 아이들을 보며 그러려니 했다. 그러니 내가 키우는 강아지의 육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모든 걸 마치고 나면 집 안은 조금 조용해진다. 자두는 제 자리에 가서 몸을 말아 눕고 나는 그제야 책상 앞에 앉는다. 맥주를 딸까, 커피를 내릴까 잠깐 적막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고요함이 찾아온다. 애 둘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은 아이들이 일찍 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내용이다. 언니도 나도 짧은 고요를 위해 하루를 꽤 성실하게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 육아의 끝에는 대단한 성취가 남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내가 무얼 위해 다시 강아지를 키우냐고 묻는다면 강아지와 함께 하는 이 모든 삶이 나를 살게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잠깐의 고요한 시간이 평화롭기만 하다. 이 아주 잠깐 허락되는 조용함을 위해 나는 또 내일 녀석의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하는 거겠지.


자두는 어두운 밤 시간을 좋아한다. 어둠이 방안을 적시면 캄캄해서 그런지 내 옆자리를 파고든다. 불을 켜고 있으면 불편한지 알아서 어두운 구석을 찾아서 몸을 웅크리고 잔다. 모든 일과의 끝에 찾아오는 녀석과의 평화로운 시간, 침대에 몸을 뉘며 코로 녀석의 털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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