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과 다른 손맛이 건네준 안부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왔다. 운송장에 이름을 확인해 보니 몇 주 전 만났던 K언 니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한테 뭘 보냈다고 연락한 적이 없는데……. 혹여나 잘못 보낸 것일 수 있으니 빠르게 연락을 했다. 내게 보낸 택배가 맞다고 한다.
택배를 열자 김치냄새가 코 끝으로 들어왔다. 이주 전 언니네 집에 갔을 때 이미 한차례 김장김치를 받은 적이 있다. 양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빠와 나는 맛있게 먹었다. 손이 큰 K 언니는 내가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한 상 가득 음식을 해준다.
수육에 노란 알배추에 갖가지 야채들, 닭볶음탕, 김치찌개, 꼬막 등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다.
원래 먹성이 좋지만 이상하게 이따금씩 K 언니 집에 놀러 가면 밥 먹을 맛이 난다.
우리 집은 김치를 시켜 먹는다. 인터넷에서 주문하기도 하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올 때도 있다. 시판 김치에서는 특유의 MSG 맛이 나는데 김치를 사 먹다가 직접 받으면 확실히 맛이 다르다. 외할머니는 철마다 굳이 본인이 김장김치를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일 년에 한 번은 빨간 고무대야 통을 봤던 것 같다.
무김치, 파김치, 부추김치, 배추김치…….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할머니는 손이 커서 한 번 김치를 담그면 대량으로 했는데 냉장고에 넣을 공간이 없어 김치냉장고가 따로 있었다.
고춧가루가 날리고 냉장고 정리를 한참 하던 할머니를 보며 참 고집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외할머니의 김치가 그립다. 정확히는 사람 손을 탄 김장김치 말이다.
K 언니 집에 모인 사람들이 김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집은 오늘 엄마랑 친척들이 와서 하고 있어. 우리 집은 내일 해. 엄마가 수육에 김치 싸 먹자고 난리야. 나는 대화에 끼어들 말을 찾지 못했다. 항상 사 먹었고, 해 줄 사람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K 언니는 내가 신경이 쓰였나 보다.
아빠는 주변에서 김치를 주면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고 말했다. 아빠가 내게 한 말이 왠지 김치 동냥을 해서 받아오라고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김치를 받았다고 쓰는 게 맞는지 얻었다고 써야 하는지 잠깐 망설였는데 결국은 ‘품앗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했다. 주고받는 사이, 말없이 이어지는 약속 같은 것. 김치가 꽤 많았다. 김장김치라고는 하나 언니도 집에서 한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어머니, 큰 어머니가 꾸준히 김치를 주신다.
김치통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괜찮단다. 김치가 너무 많아 괜찮다며 내게 상세히 보낸 김치에 대해 일러준다.
통에 있는 김치는 익은 거고 비닐에 든 건 생김치야.
생 김치 좋아하면 그냥 먹어도 되는데 좀 두고 먹어도 돼.
김치를 하나 베어 물었다. 공장에서 나온 맛이 아니라 집에서 먹는 김치 본연의 맛이 났다. 조금 짜고, 조금 맵고 그래서 며칠 뒤에 더 맛있어질 걸 아는 맛 말이다. 예고도 없이 선물을 건네받은 것 같았다.
엄마의 부고 소식에 한달음에 와서 오자마자 날 보고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준 언니가 생각이 났다. 가끔은 언니가 나와 비슷한 가정사를 갖고 있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텔레파시처럼 마음으로 느꼈다.
요즘은 뭐든 다 돈으로 계산된다. 얼마짜리인지, 값어치가 있는지. 그런데 김장김치는 여전히 가격이 아니라 손으로 오는 것 같다. 얼마나 들었는지 보다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귀하다.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마음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으니까.
김치통을 냉장고 안쪽에 넣으며 올겨울은 조금 덜 쓸쓸하겠다고 생각했다. 밥상에 김치가 있다는 건 왠지 든든해진 기분이니까. 김장김치를 품앗이받았다. 나 자신이 불쌍해 보이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손맛이 남긴 온기 덕분에 우리 집 겨울 풍경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