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되지 않은 날씨처럼

세계 장애인의 날 잊히지 않는 기상예보

by 최물결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의미 있는 날마다 어떻게 알릴지를 고민한다. 뉴스 화면 속 자막, 캠페인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특집 다큐를 편성하기도 한다. 내가 몇 년 일했던 방송국은 장애인과 함께 근무했던 데다 장애인의 날은 연례행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화면 해설작가 업무를 했기에 장애인의 날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게 잘 쓰는 글보다 어떻게 하면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다. 새로운 분야는 낯설지만 설레고 내가 할 수 있는 글을 활용하기에 일을 하는 게 너무나 재밌었다.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접하며 시각장애인들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던 값진 경험이었다.


뉴스를 틀다가 말미에 기상 캐스터가 웨어러블 옷을 입고 일어서서 날씨를 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반신마비 장애인 댄스스포츠 선수 채수민 씨였는데 KBS9 뉴스에서 일일 기상 캐스터로 나선 것이다.


원래 방송사에서는 장애인 관련 캠페인이나 특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을 출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고작 인터뷰나 잘 만든 영상 정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장애인 기상 캐스터는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글로 꼭 남기고 싶었다.


웨어러블 로봇을 입은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팔 년 만에 두 발로 서서 날씨를 전한다고? 날씨예보는 한 장면이지만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궁금했다. 인터넷을 서칭해 기사와 영상들을 찾아봤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어서지 못한 날들만큼 말을 할 때마다 적정 수준의 에너지와 폐활량이 필요한데 정말 많은 연습을 거듭했단다.


채수민 씨의 기상캐스터 도전기를 담은 기업의 다큐와 인터뷰를 감명 깊게 봤다. 하반신 마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가 괜히 짠했다.


웨어러블 로봇 그거 입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기술과 사람의 노력이 더해져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이란 걸.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장면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일일 기상 캐스터는 그녀에게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서 있지 않았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연습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장애인이지만 잘 해낸다”라는 문장을 쉽게 사용한다. 그 말은 칭찬처럼 보이지만 은근한 거리감과 기준선이 숨어있다. 정상과 비 정상인의 경계, 기대와 예외의 구분 같은 것 말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날의 기상 캐스터는 짧지만 오래도록 생각났다.


날씨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얼굴은 아직 남아 있다. 예보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장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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