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세 개나 됐던 강아지의 집 유랑기

나는 자두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by 최물결


첫째 강아지 딸기가 가고 나서 일 년 동안 방황을 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혼자 남았을 때 ‘암’을 진단받았고, 수술을 하며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간 강아지가 있었으면 수술할 생각도 못 했을 거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무게에 아픔을 망각한 채 걱정부터 녀석 걱정부터 했을 거다.


녀석이 가고 일 년이 지난 시점 할 것이 없어 매일같이 유기견 앱에 접속했다. 처음에는 인스타로 댕댕이 사진이 보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며칠이 지나니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졌다. 내 상황을 아는 친구들은 동물원이나 애견카페에 가라며 나를 만류했다.


“몸도 아픈데 네 몸을 돌봐야지 키우긴 뭘 키워.”


나를 걱정해서 하는 잔소리에 몇 번은 꾹 참았었다. 그런데 하던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듯이 답답함이 밀려왔다. 펫로스라기엔 남들처럼 떠나간 강아지를 못 잊어서 내 마음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하면 슬픔이 올라올 것 같아서, 슬픔이 녀석을 붙잡으면 안 되니까. 무지개다리에서 진심으로 안녕을 고했다. 유기견 사이트를 보고 전화를 해도 대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어느 지방의 경우에는 어린 강아지는 인기가 많아 이번 주에 추첨으로 뽑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입양 절차가 꽤나 꼼꼼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직업, 직장, 한 달 수입, 자가인지 전세인지…….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11.jpg 처음 데려왔을 때 사진 / 눈물자국 범벅에 볼품없다


그러니 자두를 만난 건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이 아닐까.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도 모른 채 나는 ‘만약 또 강아지를 키운다면?’이라는 전제로 이름부터 지어두었다. 자두를 만났을 당시 나이는 한 살 하고도 사 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 전 주인은 본인도 데려온 지 얼마 안 됐다며 기존에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가 있는데 어울리지 못해서 외동으로 키울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두 번이나 집을 옮겨 다니다니. 처음 자두를 만났을 때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나는 이전 주인에게 자두에 대해 뭐라도 더 알고 싶어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기존에 있던 두 마리 강아지와 못 어울리는 수준이 아니라 토까지 한다며 키울 수 없음을 말하는데 그럴 수가 있나 싶었다. 급한 대로 가게에서 잠을 자고 데리고 있다는 말에 얼른 녀석을 보러 가고 싶었다. 왜 자두는 자기와 같은 강아지들을 무서워하는 걸까? 아니면 싫어하는 걸까? 자두를 데려와보니 알 것 같았다.


23.jpg 처음 데려왔을 때와 다르게 평온해 보인다 같은 강아지 맞나...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정말 겁이 많고, 예민했다. 차를 타고 데리고 왔을 때도 이십 분 정도 지나자 짖기 시작했다.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구불거리는 길을 갈 때 특히나 맹렬하게 짖었다. 까탈스럽고 경계가 많은 게 어느 정도냐 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코앞에 갖다 바쳐도 낯선 사람이 주면 먹지 않는다.


펫페어에서 직원들이 맛보기 간식을 내밀면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집 안에서 외부 소리에도 짖고, 내가 외출할 때도 짖고, 아빠가 외출할 때도 짖는다. 우리는 괜찮지만 계속 짖다 보면 이웃에게 피해가 갈까 봐 훈련사도 여럿 불러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녀석은 우리를 믿으니 더 짖는 거다.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애견카페에 데려가도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면 항복한다는 의미로 꼬리를 잔뜩 내리며 안아달라고 보챈다. 안아주지 않으면 침을 질질 흘리며 돌아다닌다. 겁이 상상을 초월하는 녀석이었다.


주변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강아지 성격은 주인을 닮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일부러 전 주인이 짖는 거 말 안 하고 데리고 가라고 한 것 아니냐. 문제 행동을 했는데 계속 키울 수 있느냐 등 주변에서 자두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


동물등록 명의 변경 건으로 전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두의 이름을 보았다. 처음 말했던 이름과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등록돼 있어 다시 맞는지 돼 물었다. 그러자 등록된 이름은 다른 건데 부르는 이름은 이거였다고 설명했다. 전 주인도 데려온 지 얼마 안 됐기에 전 전 주인을 통해 들은 말이란다. 전 주인도 동물등록 명의를 바꾸지는 않은 채 이전 주인과 나 사이의 말을 전달해 줄 뿐이었다. 이름이 두 개였다니.


아마 녀석은 많이 혼란스러웠겠다. 내가 포기하면, 이 아이는 다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쁘게 생겨 또 다른 주인이 나타나겠지만 어떤 삶을 살까? 부잣집으로 가 풍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 어떨 때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완벽하게 잘 키울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는 끝까지 가야 한다면 난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두는 여전히 짖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완전히 편안해졌다고 말하기엔 적응 중인 순간들이 내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이 이 아이의 성격이고 이력이고 시간이다. 나는 자두를 고치려고 데려온 게 아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사실 매일 다짐을 갱신하는 일이다.

오늘도 괜찮다, 함께 간다. 그러니 오늘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두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부를 곳이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아이를 끝까지 부를 사람은 아마 나일 거란 걸. 그래서 더 애틋하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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