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하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부장님의 일처리 방식
첫 회사에서 유독 기억 남는 사람이 있다. 일을 잘한다기보다는 쉽게 하는 사람. 전혀 알지 못하는 직무의 웹기획, 운영팀 일을 배우며 이 년 가까이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 바로 부장님이었다.
나는 밝지만 어두운 사람이었다. 회사에 적응을 못해서가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황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머리가 새하얘졌다. 막막했고, 시작도 하기 전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첫 회사인 만큼 잘해내고 싶었던 마음도 잠시 스케줄이나 작업물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될지 몰랐다.
내게 암흑의 사수가 있긴 했지만 그녀는 스파르타 식으로 날 가르쳤다.
당시에는 그녀의 방법이 옳다 믿었고 그렇게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짬이 차고 훗날 당시를 떠올려보니 해결 방안은 꼭 한 가지가 아니었단 걸 깨달았다.
웹에이전시는 늘 ‘을’입장이라 기간 내 납기일까지 작업물을 보내고 테스트까지 완벽히 해야 했다.
간혹 작업 일정이 길어지거나 중간에서 문제가 생기는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었다.
당시 사수는 무조건 해야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클라이언트와 조율을 한다던가 회사 내부 사람들과 잘 말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일에는 기본 틀은 있을지언정 유연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왜 이때까지 안 되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설득할 수 있다면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이 도무지 풀리지 않을 때 부장님을 찾아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외에도 팀 회식을 하며 일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다. 부장님은 반달눈의 흔히 말하는 웃상 얼굴이셨는데 회사 내 사람 좋기로 칭찬이 자자했다.
당시 부장님은 꽤 굵직한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맡고 계셨다. 회사 사람들에게 전해 듣기로 일할 때 아주 나이스 한 분이란다. 사람 좋고 술 좋아하시는 서글서글한 아빠 같은 스타일 말이다.
내가 어떤 현안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물을 때면 부장님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거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건 마치 “지금 제가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밥 먹어”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하는 것과 같다. 지금 말하는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로 설명하는 것임을 밝힌다.
나의 경우에는 어디서 어떤 밥을 어디서 어떻게 시킬지 딥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부장님은 간단명료하게 답을 내놓고 방법을 제시하는 편이니.
이게 성향 차이인가 싶다가도 성향과 오랜 경험과 짬이 같이 녹아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는 ‘언제 부장님처럼 정답을 쉽게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었다.
나도 간단명료하게 한 줄로 문제의 답을 찾고 싶었으니.
나는 늘 문제를 크게 키우는 사람이었다. 일 하나를 맡으면 그 안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미리 걱정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까지 끌어와 혼자 복잡해지곤 했다.
개인적인 문제로 넘어가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자면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고민하다가 얼렁뚱땅 연락이 뜸해진 적도 있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나 혼자 판단하고 생각한 거였다.
부장님은 달랐다. 문제를 줄였고, 조율하는 능력이 있었다.
사실은 힘들었을 텐데 항상 웃었다. 웃는 자에게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때문에 누군가는 같은 일을 해도 버거워 보이고 누군가는 웃으면서 깔끔하게 끝낸다.
쪼랩 기획자 시절 나는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를 봤었다. 시간이 수년 지나고 나서야 부장님의 일 처리 방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을 쉽게 만드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 전에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해야 될 걸 알고, 불필요한 일들을 가지치기 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적당히 덜어내다 보니 한 줄 정리가 가능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람이 기억될 수 있는 건 존경할 만한 사람인가 빌런인가 두 가지인데 내게 부장님은 전자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걸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게 맞을까. 한 줄로 정리할 순 없을까. 질문 하나로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조금은 가벼워진다.